촛불은 꺼지지 않는다!

 

촛불은 번져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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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전승일

 

 

 

 

대한민국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

촛불이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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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100만 촛불, 분노한 시민"

 

 

전승일

 

 

 

 

11월 12일

‘#내려와라_박근혜! 3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

 

사진원본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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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분노한 여고생, 박근혜는 퇴진하라!"

 

 

전승일

 

 

 

 

11월 5일

‘#내려와라_박근혜! 2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여고생

 

사진원본출처: 오마이뉴스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대통령 중심제입니까?

최순실 중심제입니까?

 

죽어가는 우리나라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살리겠습니다!

 

청소년들도 나섰다!

박근혜는 퇴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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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86년 건국대 항쟁의 함성"

 

 

전승일

 

 

 

 

건국대 건물 옥상에서 투쟁하고 있는 대학생들

 

 

1986년 10월 28일, 전국 각 대학에서 모인 2천여 명의 대학생들은 건국대학교에서 ‘전국반외세반독재애국학생투쟁연합’(애학투련)을 결성하는 연합 집회를 가졌다. 당시 서슬 퍼런 전두환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2천여 명이 모여 전국 조직을 결성하는 집회를 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고, ‘건국대 항쟁’은 민주화 운동의 전국적 확산과 결집을 위한 첫 걸음이었다.

 

당시 경찰은 대학 간 연합 집회를 대부분 원천봉쇄 하였는데, 이 날 아침부터 건국대에 배치된 경찰은 검문이나 학생증 검사를 하지 않고 아무런 제지 없이 학생들을 집회장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애학투련’ 결성 선언문을 낭독하고 독재정권 화형식을 하는 순간 갑자기 대규모의 경찰 병력이 최루탄을 난사하며 학교 안으로 난입하여 진압을 시작한다.

 

학생들은 예상치 못한 폭력 진압에 밀려 학생회관, 사회과학관, 도서관, 본관 등 5개 건물로 흩어져 들어가 건물에 고립된 채 필사의 저항을 하며 철야농성을 시작했다. 학생들의 ‘강요된’ 농성은 추위와 배고픔 속에 3박 4일(66시간 50분) 동안 계속되었고, 마침내 경찰은 10월 31일 아침, 헬기까지 동원된 8천여 명의 병력을 투입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황소 30’이라는 폭력적 진압 작전을 벌여 1천5백여 명의 학생들을 연행하고 1,288명을 구속했다. ‘건국대 항쟁’은 단일 사건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구속자가 발생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치밀한 각본에 의해 ‘건국대 항쟁’을 좌경, 용공으로 매도하면서 ‘공산혁명분자 건국대 점거난동 사건’으로 꾸며냈고, 언론들은 이를 그대로 받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그러나 전두환 독재정권에 의해 1천여 명이 넘는 학생운동의 중추가 구속되었지만, 86년 ‘건국대 항쟁’이 남긴 투쟁 정신과 교훈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각성을 가져왔으며, 80년 5·18 광주민중항쟁의 정신을 잇고, 87년 6·10 민주항쟁으로 나아가는 가교 역할을 했다.

 

올해가 바로 '건국대 항쟁' 30주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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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인천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

 

 

전승일

 

 

 

 

1950년 9월초 인천 월미도를 폭격하고 있는 미군 항공기

 

 

1950년 9월 15일 한국전쟁 중 국제연합(UN)군의 인천상륙작전 직전 9월 10일부터 3~4일 동안 발생한 미군의 ‘월미도 폭격 사건’은 미 해병대 소속 항공기들이 인천 월미도에 네이팜탄을 집중폭격하고 주민들을 향해 기총소사하여 월미도 거주 민간인들이 대거 집단 희생된 사건이다.

 

당시 미 제1해병비행단의 <미군 항공공격보고서(Air Attack Reports>에 따르면 “폭격의 목적은 월미도 동쪽 지역의 전소(Burn Out) 또는 철저한 집중폭격(Saturation Bombing: 적이 있는 일정 지역을 목표로 집중적으로 무차별 폭격하는 것)으로 모든 시설을 불태우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월미도 폭격에 사용된 네이팜탄(Napalm Bomb)은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에서 사용되었는데, 소이력(燒夷力 태워버리는 힘)이 매우 커서 3,000℃의 고열을 내면서 반지름 30m 이내를 불바다로 만들고, 사람을 타 죽게 하거나 질식하여 죽게 하며, 투하 지역을 초토화해 생명체를 말살하고 생존한 생명체에게도 심각한 후유장애를 남기는 무시무시한 무기로 큰 것은 400kg에 달한다. 현재 네이팜탄은 반인도적 무기로 규정되어 사용이 금지되어 있다.

 

국제인도법에 의하면, 전쟁 시 폭격을 실행할 때는 국제인도법이 허용하는 범위(민간인에 대한 직접적 공격 금지 및 군사적 목표물에만 공격 등) 안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 즉, 월미도 폭격과 같은 ‘집중폭격’은 군사적 이익이 아무리 크더라도 목표가 특정되어야 하고, 특정한 목표가 군사적 목표물인지 확인하여야 하며, 군사적 목표물 주위에 민간인이 집중되어 있는지 여부도 확인하여야 한다. 그러나 미군의 월미도 집중폭격은 이러한 구별이나 확인도 하지 않은 무차별적 폭격이었기 때문에 국제인도법 및 ‘전시 민간인 보호를 위한 제네바협약’ 상의 전쟁규범을 지키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지난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50년 9월 10일 미군은 월미도 동쪽에 5백 이상의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음을 사전에 알고 있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에 집중폭격을 감행하고 마을을 무차별적으로 파괴한 것은 국제인도법의 원칙에 비추어 정당화될 수 없다”고 밝히며, “한국정부는 미국정부와 적극 협상에 나서서 본 사건을 한·미간에 공동조사하거나 피해자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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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중앙대 총학생회장 이내창, 27년째 의문사"

 

 

전승일

 

 

 

 

생전의 고(故) 이내창 열사 / *사진협조: 이내창기념사업회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제정 2000년, 폐지 2009년)에 따르면, “의문사(疑問死)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의문의 죽음으로서, 사인이 밝혀지지 않고, 위법한 공권력의 직접·간접적인 행사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사유가 있는 죽음을 말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즉, ‘의문사’는 민주화 운동과 관련해 경찰·군(軍)·국가정보원 등 국가 기관의 위법한 공권력으로 인해 사망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죽음을 가리킨다.

 

1989년 8월 15일, 전남 거문도 외딴 바닷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이내창 의문사 사건’은 80년대 대표적인 의문사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이내창이 혼자 바람을 쐬러 거문도에 내려가 유림해수욕장 해변가 암석지대에서 미끄러져 실족한 후 익사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유가족 및 중앙대 교수들과 학생 등으로 구성된 ‘고 이내창 학생 사인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이내창(당시 예술대학 조소과 재학 중)씨가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으로 바쁜 일정 중에 300km나 멀리 떨어진 거문도에 혼자서 갈만한 특별한 이유가 없으며, 실족으로 인한 익사라고 하기에는 사체 상태와 현장 지형 등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였다.

 

한편 대통령 직속 기구였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활동기간:2000년~2004년) 조사에 따르면, 이내창 사망 사건의 “사인 감정을 의뢰한 대한외상학회 홍윤식 박사 및 일본 법의학 카미야마 박사의 감정 소견을 종합하면, 사인은 익사이지만 두부와 안면에 집중적인 상처가 있는 것으로 보아 타자의 외력에 의한 뇌진탕 또는 좌상(외부로부터 둔중한 충격을 받아 신체 내부의 조직이나 내장이 다치는 것)으로 의식 소실 상태에서 익수되어 익사하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당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토양감정 분석결과를 보면 사망 당시 이내창이 신고 있던 신발 밑에서 적출된 토양과 경찰에서 지적한 이내창의 실족 지점(유림해수욕장 남쪽 220m 지점)의 토양이 서로 상이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또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직원과 서울시경 및 대전시경 경찰관 다수가 이내창씨와 함께 거문도에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에 따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이내창은 중앙대 안성캠퍼스 총학생회장을 역임하면서 반독재 민주화운동·통일운동·민족미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이 인정되고, 이 과정에서 국가안전기획부의 내사공작과정에서 거문도로 유인 및 납치되어 사망하였을 개연성이 높기에 민주화운동 관련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안기부(국정원)의 비협조로 직접적인 관련자를 확보하지 못했고, 또한 당시 동행자 및 감시자들로 추정되는 자들이 위원회 조사과정에서 부인진술로만 일관하고 있어 이내창의 사망 경위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하였다”고 밝히면서 ‘진상규명 불능’ 결정을 내렸다. 다만,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에는 “이내창의 죽음은 위법한 공권력의 직·간접적인 행사에 의한 사망이라고 인정할 수 있다”라는 ‘소수의견’이 남아 있다.

 

이내창 열사가 통한의 죽임을 당한지 27년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죽음은 정확한 사망 경위와 원인을 알 수 없는 ‘의문사’로 남아 있고, ‘가해자’들은 처벌받지 않았다. 현재 이내창 열사의 묘지는 경기도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 안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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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박정희 몰락의 도화선, YH 김경숙 사망 사건"

 

 

전승일

 

 

 

 

<YH 무역> 농성 투쟁 중 사망한 김경숙 열사

 

 

1979년 8월 9일부터 8월 11일까지 가발 및 봉제품 수출업체인 <YH 무역>의 여성 노동자 200여 명은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 조치에 항의하며 “배고파 못살겠다! 먹을 것을 달라!”는 구호를 외치며, 당시 야당인 신민당사(총재 김영삼) 건물 4층 강당에서 농성과 시위를 벌였다.

 

8월 11일 새벽, 경찰은 1200여 명의 병력으로 편성된 ‘101호 작전 부대’를 투입하여 강제 진압과 해산 작전에 나섰다. 진압부대는 강제 해산 과정에서 심한 욕설과 폭언을 하면서 곤봉 등 진압장구 이외에 벽돌, 쇠파이프, 의자 등 불법적인 도구까지 사용하여 농성 중이던 YH 노조 여성 노동자, 신민당 의원 및 당직자, 그리고 취재기자들까지 무차별 구타했다. 이 진압 과정에서 한 여성 노동자가 사망했다. 당시 21세였던 그녀의 이름은 ‘김경숙’이다.

 

당시 경찰은 김경숙의 사망 경위를 “진압 작전 개시 30분 전에 스스로 동맥을 끊고, 건물 4층에서 주차장 쪽으로 투신자살하였다”고 발표했고, 언론은 이를 그대로 받아서 보도했다.

 

그러나 2008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 이는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경숙이 추락 사망한 시각은 경찰의 강제 해산 작전 개시 이후였고, 사체에는 동맥을 절단한 흔적이 없으며, 오히려 손등에 쇠파이프와 같은 둥근 관에 가격당한 상처와 후두정부에 치명적인 상처가 발견되었다.

 

그리고 추락 지점도 경찰 발표와 달랐다”고 밝혔다. 즉, “김경숙의 사망 원인은 투신자살이 아니라, 경찰의 강제적인 폭력 진압 과정에서 구타당한 후 추락사한 것”이며, “진압 작전 직전 투신자살이라고 밝힌 경찰 발표는 김경숙 사망 원인에 대한 진상은폐와 왜곡행위로서 중대한 조작이며, 또 다른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라고 29년 만에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문동환, 고은, 이문영, 서경석 등 재야인사들이 구속되었고, 신민당사 강제 진압에 항의하며 박정희 정권에 대항하던 신민당 김영삼 총재는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당했다. 1979년 8월 여름, YH 여성 노동자들의 농성 투쟁과 김경숙 사망사건은, 1979년 10월 부마항쟁으로 이어졌고, 결국 장기집권 해온 박정희 유신체제는 10.26 사건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현재 김경숙 열사의 묘소는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 민주열사 묘역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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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노근리 쌍굴다리에서의 학살"

 

 

전승일

 

 

 

 

미군에 의한 대량 민간인 학살이 발생한 노근리 쌍굴다리

 

 

1999년 9월 30일, 미국 <AP> 통신은 1950년 7월말 미군에 의해 한국의 한 철도 굴다리에서 400여 명에 달하는 민간인들이 학살당했다고 보도하였다. <AP> 통신은 피해자들은 대부분 부녀자, 어린이, 노인이었다고 전했다. <AP> 통신이 노근리 학살 사건을 보도하기 전까지 미국 정부는 사건의 존재를 꾸준히 부정하였고, 한국 정부도 이에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1950년 7월말, 충북 영동 노근리 쌍굴다리 일대에서 미군에 의한 대량 민간인 학살이 발생한지 66년이 되었다. 당시 1차 학살은 철길을 따라 피난하던 민간인들을 향한 미군 항공기 공중폭격과 기총소사로 인해 발생했다. 여기서 간신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미군의 공격을 피해 철길 아래 쌍굴다리 속으로 피신하였는데, 2차 학살은 피난민들이 쌍굴다리 안에 갇혀있는 3일 동안 미군이 터널을 향해 기관총을 사격하여 발생했다.

 

노근리 학살 사건 피해자들은 이 사건이 전쟁법 및 국제인도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도에 반하는 ‘전쟁범죄’에 해당하고, 국제인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생명권의 침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 사건에서 미군에 의한 피난민에 대한 공중폭격과 지상사격은 전시 민간인 보호에 관한 국제법 위반이며, 피해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명예회복이 될 수 있는 방법으로 미국 정부의 공식사과와 함께 배상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99년 10월, 김대중 대통령은 노근리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지시하였다. 이에 따라 ‘노근리사건진상규명대책반’이 정부 차원에서 구성되었으며, 2004년 ‘노근리사건특별법’이 제정되었고, ‘노근리사건희생자심사및명예회복위원회’가 설치되었다. 그리고 정부 차원의 조사 결과 노근리 사건은 “철수 중이던 미군이 1950년 7월 25일부터 7월 29일 사이 노근리 철로 및 쌍굴 지역에서 피난민을 통제하던 중 수 미상의 피난민을 살상하거나 부상을 입힌 사건”이라고 규정하였다.

 

1994년 여러 어려움 속에서 노근리 민간인 학살 사건을 다룬 실화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정은용)가 출간되었고, 2002년 영국 <BBC>는 한국전에서 미군이 벌인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프로그램 “모두 죽여라: 한국전에서 미군이 한 행위”(Kill’em All: American Military Conduct in the Korean War)를 방영했다. 그리고 만화가 박건웅은 <노근리 이야기 1부 - 그 여름날의 기억>(2006)과 <노근리 이야기 2부 - 끝나지 않은 전쟁)(2015)를 그렸으며, 2010년에는 노근리 사건을 다룬 최초의 영화 <작은 연못>(감독: 이상우)이 제작되었다. 현재 충북 영동군에는 ‘노근리 평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66년 전 노근리 쌍굴다리 일대에서 미군의 공격에 의해 억울하게 학살당한 민간인 희생자의 숫자는 지금까지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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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영국 <BBC> 방송

 

한국전에서 미군이 벌인 전쟁범죄를 고발하는 프로그램

 

<모두 죽여라: 한국전에서 미군이 한 행위> (Kill’em All: American Military Conduct in the Korean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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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경산 코발트 광산의 비극"

 

 

전승일

 

 

 

경산 코발트광산에서 쏟아져 나온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골

 

 

한국전쟁 발발 직후 이승만이 대전에 머무는 동안 바로 그 곳에서 대규모 민간인 학살이 일어났다. 당시 국군과 경찰은 6월 28일부터 7월 17일까지 세 차례에 걸쳐 적어도 4900여 명에서 7000여 명의 대전 형무소 재소자 및 보도연맹원들을 산내 골령골로 끌고 가서 집단학살한 것이다. 이는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반인도적인 집단학살 사건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1950년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 경북 경산에서 또 다시 대규모 민간인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국군과 경찰은 대구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재소자들과 예비검속된 대구·경북 국민보도연맹원 등 3500여 명에 이르는 민간인들을 경산시 평산동 폐코발트 광산과 인근 대원골 등지에서 집단학살한 후 경산 코발트 광산 갱도 내부에 집단 암매장한 것이다.

 

경산 코발트 광산은 1930년대 일제가 태평양전쟁에 소요되는 군사용 코발트 공급을 위해 채광을 시작한 대표적인 식민 수탈지로 2차 대전 종전 직전 폐광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1950년 대규모의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지역이다. 학살은 매우 잔혹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당시 포승줄에 묶인 채 수십 대의 군용트럭으로 실려온 사람들은 수직갱도 입구에 나란히 세워진 뒤 총살되거나 산 채로 수장되기도 했다. 또한, 일부는 도끼 같은 예리한 흉기로 가격당하거나 기름에 불태워지는 등 잔인하게 학살당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 3회에 걸쳐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학살 희생자 유해 발굴 사업을 하였고, 2009년 경산 코발트 광산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하여, “이 사건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일차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군과 경찰이.. 사람들을 불법 학살한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이다. 비록 전시였다고 하더라도 범죄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민간인들을 예비검속하여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사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라고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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