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신기철)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 출신인 저자는 지난 10여 년간 수집해온 증언자료와 조사기록 등을 묶어서 고양 금정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친다. 이 책은 한국전쟁 시기 부역 혐의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 문제를 가장 심층적으로 조사·분석한 매우 귀중한 저술이라 하겠다.
책 속에서 밝힌 사건의 배경과 학살의 전모, 희생자의 유형과 가해자의 실체, 그리고 유족들이 받았던 피해사례 등은 한국전쟁 당시 광범위하게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전체 실상을 알려주기에 손색이 없다. 금정굴 사건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 사례들은 곧 전국적으로 자행된 학살사건의 실체라 할 것이다.
특히 저자가 직접 채록한 증언들은 반세기 이상 참담한 역사를 외면하고 부정해 왔던 우리들의 체부를 아프게 찌르고 있다. 신 전 팀장은 희생자와 가해자들의 기억과 증언과 관련된 내용들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건조한 문체로 정리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역사적 망각을 되돌리기에 충분할 만큼 생생하다.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 출신이 공개하는
최초의 진실·화해 보고서!
지난해 12월 31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이 종료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5년 동안 총 1만 1,000여 건의 사건을 조사 완료했고, 이중 8,500여 건을 진실 규명했다.
하지만 이런 외형적 ‘성과’와 달리 진실화해위원회는 활동 종료 시점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명박 정부로의 정권교체 이후 그간의 조사활동이 이념 논란으로 변질되는 후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전국유족회’ 등 피해 유족단체들이 진실화해위원회의 종합보고서가 부실한 내용으로 학살자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며 성토하고 나섰고, 학계에서도 보고서가 군경과 좌익에 의한 희생을 병렬적으로 기술해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의도적 폭력이란 성격을 희석시켰다는 비판이 나왔다. 또한 미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도 미국 쪽 설명 위주로 기술해 희생의 불가피성을 부각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마디로 ‘진실’ 없는 진실화해위원회란 지적인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누구보다 마음이 착잡한 이들은 조사를 직접 담당했던 일선의 조사관들일 것이다. 신기철 전 진실화해위원회 조사2국 조사1팀장 역시 마찬가지다. 고양시 금정굴 민간인 학살사건을 담당했던 그는 진실도 화해도 이루지 못한 지난 5년간의 활동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가 이 책을 출간한 동기 역시 그와 같은 착잡함과 아쉬움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진실과 화해를 위해’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 출신이 최초로 공개하는 진정한 의미의 조사보고서라 할 수 있다.
고양 금정굴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최초의 심층 보고서
한국전쟁 시기 수많은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학살되었다. 참으로 참혹하고 비극적인 희생이었다. 한국전쟁은 전 국토가 뒤섞인 전쟁터였고, 밤낮으로 점령군이 바뀌었다. 점령군이 좌우익으로 교체될 때마다 응징 보복의 학살이 마치 톱질하듯이 번갈아 자행되었다.
특히 수복해 들어온 남한의 군대, 경찰, 우익단체에 의한 보복학살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진실이 드러나지 못했다. 인민군 편에 가담했거나 어쩔 수 없이 그들에게 협력했던 사람들은 ‘부역자’로 낙인 찍혀 학살 대상이 되었다. 적군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부역혐의를 뒤집어쓴 채 야만적으로 학살당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금정굴 사건 역시 마찬가지이다. 금정굴 사건은 서울 수복 직후인 1950년 10월 고양경찰서 소속 경찰관, 의용경찰대, 태극단(6·25전쟁 당시 고양지역에서 결성된 반공청년조직)이 최소 153명의 주민을 부역자로 몰아 고양지역의 한 폐광인 금정굴에서 총살한 사건이다.
하지만 금정굴 사건은 발생일로부터 반세기 가까이 지나도록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고, 피해 유족들은 침묵을 강요당했다. 지난날 학살을 주도했던 자들이 권력을 장악하고 한국 사회를 좌우해 오면서 그들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혐의를 씌웠고, 침묵을 강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이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사회의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민간인 학살의 실체도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피해 유족들은 강요당한 침묵에서 벗어나 학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나섰고,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을 시작했다. 금정굴 사건 역시 1995년 10월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이 본격화됐다.
희생자들의 유해 발굴 때부터 진실 규명을 위한 노력을 벌였던 신기철 전 조사관은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에 참여한 뒤 본격적으로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매달려 왔다. 마침내 그는 2007년 “금정굴 사건은 당시 고양경찰서장 책임 아래 자행된 집단살해이며, 그 최종 책임은 국가에 귀속된다”는 <진실화해위원회 1차 보고서>를 통해 진실에 다가설 수 있었다. 또한 국가가 유해를 봉안할 수 있는 추모시설 설치 등을 신속히 처리할 것을 권고문에 담아내는 성과를 얻었다. 그 후에도 신 전 조사관은 2009년 국가기록원의 보존 자료를 통해 금정굴 사건 당시 고양경찰서에서 조직적으로 학살에 개입한 사실을 증언하는 문서를 확보하기도 했다. 이는 학살의 주체를 확증하는 자료이자, 일선 경찰서의 단독 행동이 아니라 그 윗선의 조직적 개입을 확인할 수 있는 단초였다.
하지만 2008년 정권 교체 이후 금정굴 사건의 진실 규명 활동은 벽에 부딪히기 시작했다. 1995년 발굴된 금정굴 사건 피해자들의 유해는 16년이 지나도록 서울대병원 법의학교실에 방치되어 있고, 애초 진실화해위원회가 1차 보고서에서 권고한 추모시설 설치는 현재까지도 아무런 진척사항이 없는 실정이다. 또한 새로운 조사 내용이 드러났지만 이를 반영하는 2차 보고서는 끝내 채택되지 못했다.
결국 신 전 조사관은 지난 10여 년간 수집해온 증언자료와 조사기록 등을 묶어서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라는 책을 발간하기에 이르렀다.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지 두 달이 되는 시점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제노사이드의 실상을 알려주는
최초의 역사 기록서
신 전 팀장은 금정굴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해 그동안 각종 공공기록을 세밀히 수집하여 검토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회고록·증언록들을 낱낱이 검토했고, 생존해 있는 관련 인물들을 일일이 찾아 생생한 증언을 청취했다. 또한 관련 학술연구물은 물론 미국 측의 자료들까지 조사하여 제시했다. 그는 이처럼 매우 공들여 조사한 다양하고 풍부한 관련 자료들을 원고지 1,800매라는 방대한 분량의 내용으로 정리해냈다.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는 주로 고양 금정굴 민간인 학살사건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에서 밝힌 사건의 배경과 학살의 전모, 희생자의 유형과 가해자의 실체, 그리고 유족들이 받았던 피해사례 등은 한국전쟁 당시 광범위하게 자행된 민간인 학살의 전체 실상을 알려주기에 손색이 없다. 금정굴 사건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 사례들은 곧 전국적으로 자행된 학살사건의 실체라 할 것이다. 특히 신 전 팀장이 채록한 증언들은 반세기 이상 참담한 역사를 외면하고 부정해 왔던 우리들의 체부를 아프게 찌르고 있다. 신 전 팀장은 희생자와 가해자들의 기억과 증언과 관련된 내용들을 최대한 객관적이고 건조한 문체로 정리하고 있지만, 우리들의 역사적 망각을 되돌리기에 충분할 만큼 생생하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 대해 역사학계의 참스승이라 할 이이화 선생은 “금정굴 사건이라는 하나의 진실을 통해 광란의 시대에 저질러진 ‘제노사이드(genocide)’ 전체의 실상을 알려주는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진실, 국가범죄를 말하다》는 한국전쟁 시기 부역 혐의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 문제를 가장 심층적으로 조사·분석한 매우 귀중한 저술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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