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담의 ‘세월오월’과 광주비엔날레[김동민 칼럼] 미디어오디세이<19>
결국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은 제20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달콤한 이슬, 1980 그 후’에 걸리지 못하게 되었다. 홍 화백이 8월 24일 기자회견을 갖고 전시 포기를 발표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전문가는 자신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광주시장은 자신이 비엔날레 이사장인 줄 모르는 이 황당한 현실은 ‘세월호’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라고 비판했다.
홍 화백은 또 “책임 회피와 19일 대토론회 등의 모호한 결정 뒤편에 행정당국의 더 큰 음모가 도사리고 있으며, 이것은 곧 파탄의 상황을 불러올 것임을 경고한다”면서 “죽어버린 광주에서 앞으로 절대 작품을 전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가? 홍 화백은 우연히도 안산 단원고 바로 옆에서 작업을 했다고 한다. 작업실에서는 단원고 학생 둘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 중 한 여학생이 세월호에서 희생되었다고 한다. 1980년 광주항쟁에서 시민군으로 싸웠던 그에게 세월호는 남달리 애절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그래서 그린 것이 <세월오월>이다.
그런데 광주시가 광주비엔날레 특별전에 초대된 <세월오월>이 박근혜를 비난하고 있다면서 전시를 거부하고 수정을 요구하는 등 몰상식한 처사를 거듭함으로써 작가가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이다.
▲ 홍성담 화백의 <세월오월> 원작(그림 위)과 박근혜를 닭으로 수정한 그림. |
광주시 오형국 행정부시장은 “광주시 예산 지원으로 개최되는 광주비엔날레에서 국가원수인 박근혜 대통령을 희화화하는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작품 수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작품을 전시하게 할 수 없다”고 한 결과다. 세상에 대통령을 풍자한 그림을 전시할 수 없다니 말이 되나? 대통령이 성역인가? 박근혜 그림은 전체 그림에서 극히 일부다. 다음은 홍성담 화백이 <뉴스타파>에서 밝힌 소회다.
“진도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이건 정말 어마어마한 국가폭력에 의해서 물속에서 아이들과 승객들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3일간에 걸친 물고문으로 죽어간 대학살극이다. 80년 광주 5월에는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신군부세력이 시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학살사건은 한국의 천박한 자본주의가 최소비용으로 최대이익을 내야 하는 정글식 자본주의의 법칙과 부패한 관료들, 무능력한 정권이 3자 카르텔을 형성해서 맺어진 학살사건입니다…이런 따위의 국가시스템에서 이런 정도의 풍자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이 시스템이 허약하다는 얘기입니다. 저는 민중미술 1세대로서 그리고 광주항쟁을 겪었던 화가로서 우리 시대에 주어진 또 다른 광주들, 국가폭력들과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싸우는 게 제 인생의 목표이고 목적입니다…80년 5월 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당시에 죽은 내 동지들과 약속한 사안입니다”
그림은 예술이기에 앞서 미디어로서 기록의 수단이다.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전에는 수 만년 동안 그들의 생활과 생각을 그림으로 남겼다. 그 기능을 나중에 문자가 보다 효과적으로 수행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림은 미술이자 동시에 기록의 미디어였다. 미술이란 미적 표현의 ‘기술’이다. 미술이 예술을 위한 예술로서 독립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접어들어서였다.
르네상스 시기부터 미술은 독자적인 예술로서의 입지를 확보했지만 여전히 왕실과 교회의 지원으로 유지되었으며, 상업 자본주의의 발달과 더불어 부자(부르주아지)의 주문에 의해 그림을 그려주는 새로운 풍조가 생겼다. 그리고 산업자본주의 시기, 특히 사진의 발명과 더불어 미술은 예술을 위한 예술의 입지를 굳히게 되었다. 당시 유행하던 사실주의란 것은 바로 현실의 기록이라는 목적에 충실했던 것이다. 역사화도 마찬가지다.
사진의 등장 이후 미술사조는 인상파로 넘어가면서 기록의 기능은 사진에 맡기고 순수예술로 바뀌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아있는 미술의 한 가지 기능은 미디어로서의 기록의 기능이다. 현대미술 중에서 특히 민중미술은 시대정신을 표현하는 강력한 미디어다.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온갖 허위 · 날조 · 왜곡보도가 난무할 때 민중미술은 진실을 기록하고 전달하며 공유할 수 있는 미디어인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그것도 광주시가 그 민중미술의 언론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것이다. 어떻게 했는지 홍 화백으로부터 들어보자.
“작가가 그림을 그려가는 중에 수정 요구를 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큐레이터가 와서 그런 요구를 한다는 건 현대미술사에서 최초의 일…큐레이터들은 박근혜 얼굴만 고쳐 달라. 그래서 좋다, 하겠다. 두 가지를 제시할 테니 당신들이 골라라…그래서 닭으로 교체해 달라. 박근혜의 별명이 닭 아닙니까. 그런데 닭으로 교체해도 되겠습니까? 괜찮다고. 알았습니다. 그래서 닭으로 교체했습니다…관료들의 요구조건은 이렇다. 이걸 닭으로 고치려면 그 뒤에 있는 모자의 별도 떼고 선글라스도 벗기고 김기춘 실장도 빼고 이건희 회장도 빼고…이것이 요구다”
이건 정말 모독적인 요구요, 언론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다. 그것도 성이 차지 않았는지 광주시는 아예 전시 불가 입장을 발표했다. 홍화백의 작품 설명이다. 지금 상황에서 꼭 필요한 그림이 아닌가.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세월호를 그대로 들어 올려서 세월호에 갇혀있던 아이들과 승객들이 탈출하고 바다 한가운데로 새로운 땅이 돋아나고 길이 생겨서 그 길을 따라 아이들이 우리들 품으로 되돌아오는 식으로 국민을 치유하고 위로하는 그림이 되길 원했습니다”
박근혜가 이 집단학살에 책임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 표현을 했을 텐데, 대통령이라고 해서 허수아비나 닭으로 묘사했다고 전시를 못하게 한 것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 홍성담 화백이 지난 8일 광주시 동구 메이홀에서 <세월오월> 완성작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독일에서 작품 활동을 했으며, 이번에 전시에 참가했다가 광주시의 처사에 항의하며 자신의 작품 전시를 철회했던 정영창 화백이 <뉴스타파>에서 한 얘기다. “메르켈 수상 같은 경우 작가들이나 일반 시민들이 히틀러로 표현하지 않습니까. 히틀러가 누굽니까. 예전에 수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한 사람인데 그 사람과 비교하는 그림이 돌아다녀도 언론에서나 정권에서나 메르켈의 비서실이나 거기에 대해 전혀 얘기가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 모든 것이 보장되는 거 아닙니까. 그게 왜 우리나라에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윤장현 광주시장의 답변이 가관이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게 내 기본적인 생각입니다.” 광주시의 몰상식한 처사가 간섭이 아니란 얘기다. 치졸한 유체이탈적 발뺌이다. 광주문화도시협의회(공동대표 김병기)는 13일 성명을 내고 "이번 사태의 단초가 예술가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광주시의 과도한 간섭으로부터 촉발됐음을 상기하면 모든 책임은 후진적이고 비민주적인 광주시의 문화행정에 기인한 것이며, 광주시장도 도의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사태에 대해 미술계는 조용하다. 창작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려는 의지는 없고 잿밥에만 관심이 많으며, 속으로 반목과 갈등이 깊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책임 큐레이터이자 미술평론가인 윤범모 교수는 그의 저서 <미술본색>에서 미술계에서 스타가 되려면 다음과 같은 십계명을 지켜야 할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제1조 역사의식 같은 것은 쓰레기통에 버려라
제2조 무조건 대국(大國)의 유행을 따르라
제3조 무표정의 장식그림만이 살 길이다
제4조 무슨 짓을 해서든 유명해져라
제5조 패거리를 이뤄 인맥을 관리하라
제6조 경력을 관리하라
제7조 전업 작가보다는 대학교수 쪽을 택하라
제8조 책을 읽지 마라
제9조 그림 값은 멋대로 불러라
제10조 작가정신과 속물근성을 맞바꾸라
2014. 8. 26 / 김동민 한양대신문방송학과 교수
http://www.upubli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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