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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외상전문 치유센터 시급

자료/자료_국가폭력 트라우마

by 미메시스TV 2012. 6. 27.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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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중 1명이 정신분열·자살 시도... 이들을 어쩔 건가
6월 26일은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외상전문 치유센터 시급
임채도 (chedo) 기자
  
영화 <박하사탕>의 한 장면
ⓒ 이스트필름
박하사탕

6월 26일은 UN이 정한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고문을 반인륜적 반문명적 범죄로 규정하고 고문 근절을 위한 선언, 규약, 지침, 의정서 등을 지속적으로 채택해 왔다.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은 고문방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이러한 지속적 노력을 가속화하고 고문과 그밖의 잔혹한·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을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 투쟁을 더욱 실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1997년 제정됐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경까지 과거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발생한 고문, 집단 학살, 의문사, 인권유린 등에 대해 국가가 직접 그 진상을 조사하고 국가의 반민주적 반인권적 폭력행위에 대해 여러 차례 밝힌 바 있다.

 

그 결과는 현재까지 5·18항쟁 피해자 5060명(인정 피해자), 4·3항쟁 피해자 1만4028명(신고된 희생자),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 신청사건 8450건,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인용결정 건 9755건 등 단편적인 수치로 확인되고 있다.

 

물론 이 통계들은 어디까지 신청, 신고에 의해 확인된 숫자에 불과하다. 장기간에 걸친 권위주의 정권 치하에서 반공과 독재 이데올로기에 의해 국가폭력 피해자들은 침묵을 강요받아왔다.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실제 피해자 가운데 진실규명을 신청한 비율은 10%가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까지 우리 사회에서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자들의 정확한 숫자는 아직 가늠할 수조차 없는 실정인 것이다.

 

26일은 UN이 정한 '국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지난 1999년 11월 25일 오전 고문기술자 이근안 전 경감이 납북어부 김성학씨에 대한 불법감금과 폭행혐의에 대한 재판을 받기위해 수원지법 성남지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진실위

한국 고문피해자들의 실태는 1980년대 후반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폭로, 모임 결성, 소송제기 등의 과정을 통해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존재와 고통들을 스스로 알리면서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실시된 고문피해자 실태에 관한 조사 가운데 가장 최근의 것으로 2011년 인권의학연구소가 조사한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에 의하면, 피해자들은 주로 1970~1980년대 전후 국가기관에 의해 피해를 입었다. 고문을 당한 장소로는 경찰서(52.1%), 보안수사대 대공분실(30.7%), 보안사(24.5%), 안기부(20.9%), 구치소 등 구금시설(17.1%), 검찰(9.2%), 기타 시설(2.5%) 등이었다.

 

불법구금일수는 시국사건의 경우 평균 약 34일, 조작간첩사건의 경우 약 40일, 비시국사건의 경우 약 2일 등으로, 정치적인 이유로 조사를 받던 중 장기간 불법구금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불법구금일수는 시기별로 1970년대 약 32일에서 1980년대 41일, 1990년대 약 16일로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최대치를 기록하다 1987년 이후 점차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문피해의 유형을 빈도순으로 보면 욕하거나 모욕 주기, 외부인과의 단절, 온몸구타, 날개꺾기, 손가락 비틀기, 털 뽑기 등이 많았고, 그외 다양한 신체적/비신체적 고문이 사용되었다. 가장 극단적인 고통을 유발한 고문으로 물고문과 각목고문(무릎 사이에 각목을 끼우고 밟기)을 꼽았고 매달기(통닭구이, 비녀꽂기), 송곳 찌르기, 온몸구타, 전기고문, 성기고문 등이 그 다음이었다.

 

고문피해자들이 신체적 손상은 타박상, 두통, 어지러움 증상이 많았고, 고문으로 인해 손상받은 신체 부위는 근골격계(80.1%), 피부, 신경계(63.2%), 호흡기 순이었다. 

 

한편 고문피해자들의 고통은 고문 당시로 끝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고문피해자들은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사회경제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회경제적 고통으로는 보안관찰, 취업 제한과 교육 기회 상실로 직업활동을 지속할 수 없는 점, 고문 후유증에 의한 건강문제로 생활하는 데 제약이 따르는 점 그리고 사회적 지지의 부재 등으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문피해자 정신분열증 진단, 일반인보다 20배 이상 높아

 

고문사건 이후 피해자들의 건강실태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정신질환이다. 고문피해자들의 우울증 진단은 23.1%로 일반인들의 평생 우울장애 유병률 5.6%(2006년 통계청)에 비해 약 4배 정도 높았다. 불안장애는 17.9%로 일반인의 2.8배, 정신분열증 진단은 11.3%로 일반인들의 정신분열증 평생 유병률 0.5%에 비해 20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조사대상자의 24.4%는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었다. 이는 2010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소득수준 '하'의 계층에서 자살시도율 10.4%에 비해 2.4배 높은 수준이다.

 

특히, 이 조사에서 고문 등에 의한 대표적 정신적 외상인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의 위험 가능군에 해당하는 피해자는 76.5%에 달했다. 그 외 신체화 증상, 대인예민성, 우울, 불안, 적대감 등 복합외상후유증의 하위 증상 수준도 심각한 수준임이 확인되었다.

 

  
▲ 조화 놓인 고 김근태 의원 고문 조사실 입구 1985년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의장이었던 고 김근태 의원이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살인적인 물고문, 전기고문 등을 받았던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현 경찰청 인권센터) 515호 조사실 앞에 1월 14일 오후 조화가 놓여 있다.
ⓒ 권우성
남영동대공분실

무엇보다 심각한 점은 고문피해자들의 심리적 후유증이 가족들에게 전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조사에 참여한 가족 상담자 전원이 완전 PTSD 증상의 위험 가능군에 해당됐다.

 

PTSD 외 대인예민성 증상의 위험가능군에 50%, 신체화 증상 위험가능군에 40%, 적대감 증상 위험가능군에 40%, 불안증상 위험가능군에 30%, 우울 증상 위험가능군 30%이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나 고문피해자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의 전이 외상이 심각한 수준임이 드러났다.

 

이러한 조사결과들은 고문의 경험은 사건이 일어난 지 20~30년이 지난 현재까지 고문피해자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 일부 피해자들이 국가기관의 재조사를 통한 고문 인정이나 법원의 재심을 통해 고문피해를 인정받고 있는 사실과 관련하여, 피해자들의 심리적 후유증의 상태는 이와는 무관하거나 그 영향이 미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기관의 재조사 결과에 대해 전체 피해자들의 49.2%, 시국사건 관련자의 경우는 73.6%가 불만족한다는 의견을 나타냈고, 재심 재판을 통한 법원의 구제조치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77%가 불만족한다는 견해를 보였다.

 

경제적 보상이 이미 이루어진 5·18 피해자들의 경우 2006년 보고에 의하면 전체 5·18 유공자 가운데 절반정도가 여전히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상태에 처해 있다. 5·18 피해자들의 자살 통계를 보면, 1980년대 25명, 1990년대 3명, 2000~20011년까지 12명으로 최근 자살률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국가구제조치를 통한 진실 규명이나 법적 결과에 따른 경제적 보상과 배상에도 불구하고 고문 피해자들의 정신심리적 후유증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요컨대, 과거사 관련 국가기관의 재조사 결과 진실이 규명되거나 재판을 거쳐 고문 사실을 인정받은 경우에도 피해자들은 신체화 증상을 제외한 여러 심리적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고 따라서 이들에게 일상적인 생활로의 복귀와 재활은 여전히 힘겨운 과제로 남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국가폭력 피해자 구제법과 외상 전문 치유센터 마련돼야

 

  
고문피해자 실태조사 현장
ⓒ 사단법인 인권의학연구소
고문피해조사

현재 UN 고문방지협약에 가입한 나라는 129개국이고, 고문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재활 치유 센터가 설립된 국가는 73개국 170여개 소에 이른다. IRCT(국제고문피해자재활협회)에 가입한 아시아 지역 트라우마 센터만 14개국 33개소에 이른다.

 

국내에는 인권의학연구소 등 몇몇 민간단체에서 피해자 치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을 뿐 아직까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국가폭력 피해자에 대한 전문적 치유센터는 없다. 그러나 최근 광주광역시에서 '정신건강증진조례'를 마련하고 5·18 관련자와 유가족의 외상 후 스트레스 관리 및 상담과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처음으로 '트라우마 센터'가 금년 7월 중 건립될 것으로 보인다.

 

지방자치단체가 먼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동안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여러 과거사위원회, 5·18, 4·3 관련 공식기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로 확인한 다수 피해자들이 전국에 흩어져 살고 있는 현실에서 개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진행하는 치유센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무엇보다 민간인 학살과 고문 가해 행위 책임 소재가 궁극적으로 국가에 있다는 점에서 볼 때, 국가 차원의 포괄적인 국가폭력 피해자 구제법 제정과 정신적 외상 전문 치유센터의 건립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인권의학연구소 연구조사실장입니다

2012.06.26 14:00 ⓒ 2012 OhmyNews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48706&PAGE_CD=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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