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속에서 찾는 마음 치유 ⑩> 국가 폭력 트라우마



이년 전 팔월의 어느 날, 나는 꼬박 이틀을 전북 부안에 있었다. 젊은 시절, 채석강으로 여행을 갔던 일 외에 내가 부안을 자세히 알기 위해 그곳을 찾은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작 이틀로 부안의 무엇을 알수 있으랴 만은 내가 부안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이틀이었다. 이틀 동안 나는 부안을 들여다보고 그곳 사람들의 상처를 읽어내서 글로 써달라는 요청을 받은 터였다. 부안으로 귀농한 지인도 만날 겸 가벼운 맘으로 들러보자 맘먹었지만 부안에 있는 이틀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안은 상처가 깊게 깔린, 그래서 그 상처가 언제 해일처럼 밀려와 부안을, 아니 어쩌면 이 나라 전체를 덮칠지 모를 무서운 땅이었다.


국가 인권위원회에서는 국가 폭력으로 인한 트라우마를 진단하고자 하는 단계로써 철거민과 노동자, 그리고 환경피해 지역 등의 주민들이 겪고 있는 마음과 몸의 상처를 직접 글로 써달라는 요청을 기록 작가들에게 한 일이 있다. 나는 그 기록을 요청받은 기록자 중 한명이다.


그 당시 국가 인권위원회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많을 때라 선뜻 ‘인권’이라는 국가 매체에 글을 싣기가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전에 내게 메일로 보내온 기획서에는 앞으로 공권력의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건립하고자 한다는 취지도 있었기에 나는 인권위원회에 대한 실망과 미움의 마음을 접어두고 취재에 응했다. 부안은 핵폐기물 처리장 건립 반대 투쟁으로 많은 주민들이 다치고 구속된 상처가 있는 지역이다.


핵 폐기물 처리장이 결국은 부안이 아니라 경주에 건립되었기에, 건립 반대를 외친 주민들의 입장에서 보면 요구가 관철된 승리한 싸움이며, 2003년의 일이라 시기적으로도 이미 오래된 투쟁인데 무슨 트라우마가 깊이 남아 있겠느냐는 추측을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내가 이틀간 들여다본 부안 사람들의 마음은 2003년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았다. 그리고 핵폐기물 처리장이  경주에 있건 부안에 있건, 그 결과와는 별도로 반대 과정에서 공권력에 의해 두들겨 맞고 많은 이들이 구속되었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세월이 갈수록 결코 옅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깊어져 있었다.


첫날을 보내고 민박집에서 나와 다음날 아침밥을 해결하기 위해 들른 식당에서 나는 ‘이 마을에도 부안 핵 폐기물 처리시설 반대 투쟁 때 다치거나 구속된 사람들이 있느냐’고 주인에게 물어봤다. 갑자기 주인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리 아저씨가 오늘 세 번째 수술하러 가는 날이라요.’ 주인아주머니의 남편은 부안 투쟁때 경찰에게 맞아 코가 부러져 앞으로도 몇 번을 더 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좀 더 자세한 취재를 하고픈 욕심에 국가 인권 위원회의 요청으로 취재차 왔다는 이야기를 하자 주인아주머니는 버럭 화를 내며 당장 나를 쫓아낼 기세였다. 국가에 대한 감정이 내게 투사된 거였다. 아주머니의 긴긴 화를 다 받아 내느라 나로서도 참기 힘든 시간이었지만, 부안 사람들의 상처가 이토록 깊다는 걸, 나 또한 곤혹스럽게 절감한 순간이기도 했다.


평화롭고 소박하게 살고픈 욕심 하나로 부안에 정착해 농사를 짓던 젊은 부부. 투쟁중에, 혹은 그 이후에 갈라지고 돌아 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남편은 점점 병들어 갔다. 힘이 빠지고 시름시름 아픈가 싶어 이 병원 저 병원 다녀봤지만 차도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얻은 그의 병명은 ‘우울증’, 그 남편을 대신해 생업을 돌보는 아내 또한 2003년에 경찰에게 두들겨 맞아 앞니가 부러졌는데 십년 가까운 세월이 지났지만 잇몸이 점점 깊이 병들어갔다.

 

‘자가 면역 결핍증’. 몸에 생긴 상처를 스스로 수용하지 못함으로써 항원에 대해 항체가 반응을 하지 않는 상태다. 순박하게 웃는 아내의 얼굴에는 이미 검푸르게 죽어버린 잇몸이 자리하고 있다. ‘항체가 잇몸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반응을 하지 않으면 암이나 더 큰 병이 생길 수 있어요.’

우리밀로 호박전을 구워 몇 접시나 내게 내주던 착한 그들의 아픈 말들이 생각난다. 지금 그들은 건강할까.


현대 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올라가 있는 철탑 아래서 투쟁에 합류한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나는 자주 부안이 떠오른다. 날이 갈수록 깊어지기만 하던 상처. 마음이 병들고 몸이 병들고, 아무도 위로할 수 없는 단절의 고통이 머물던 방. 
왜 그들은 복직 판결을 받고도 공장에 돌아가지 못하고,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법의 판결을 받고서도 정규직이 되지 못하는가. 이것은 국가의 폭력이다. 폭력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국가 폭력에 의한 트라우마 치유 센터 건립만큼 중요한 건 트라우마 발생을 막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이다.



2013. 3. 13

http://www.usjournal.kr/News/8302






Posted by 미메시스 미메시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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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과 트라우마에 대한 예술적 기억과 성찰 by 미메시스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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