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4명 희망 파수꾼 “용산 진실 뭔지 ‘두 개의 눈’ 떠주오”
[송기자·조피디의 엔딩크레디트 ‘세 줄 밑’] ‘두 개의 문’ 배급위원단
한겨레 송호진 기자기자블로그 조소영 피디기자블로그

 

 

<두 개의 문> 배급위원들이다. 김영희씨만 웃었다. “교도소에서 남편이 신문에 나온 사진 보면 좋아할 거예요.” 용산참사 당일 망루에 올랐다가 구속된 남편은 대구교도소에 수감중이다. 용산참사 유가족 전재숙(고 이상림씨 부인)씨와 영화 포스터에 얼굴을 기부한 최규석(만화가)씨, 김상우(청년지식인밴드 더 가라오케스 리더)씨가 각각 글자판을 들었다.

 

[송기자·조피디의 엔딩크레디트 ‘세 줄 밑’] ‘두 개의 문’ 배급위원단

 

‘이쁜이’랑, 이 녀석이 낳은 강아지들이 있는 힘껏 꼬리를 흔들었다. 해장국 식당 일을 마치고 폐허가 되다시피 한 마을 집터 사이로 걸어오는 ‘안주인’의 말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가만 보면 사람보다 개가 나아요.”

 

이곳 서울 상도4동 일대가 2007년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뒤 강제철거가 이어지면서 300가구 남짓 북적이던 마을엔 3가구 정도만 살고 있다. 대학생들이 그려줬다는 해바라기, 만화캐릭터 ‘뽀로로’ 그림들이 헐린 집들의 담벼락에 덩그러니 남았다.

 

“전세 200만~1700만원 내고 살던 돈 없는 사람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 더 못한 곳으로 가야 해요. 여기서 무너지면 삶도 무너지거든요. 이 영화를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했어요.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실이고, 용산의 일이 다른 동네에도 닥칠 수 있거든요. 나도 그랬지만, 자기에게 닥치기 전엔 잘 모르죠.”

 

26일 상도4동 마을에서 만난 김영희(47)씨는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김일란·홍지유 공동연출)의 극장 개봉비용으로 3만원을 후원했다. 한때 미싱사였던 그는 식당에서 하루 6만5000원을 번다. 남편은 철거민 5명, 경찰특공대 1명이 숨진 2009년 1월 용산참사 진압 현장에서, 같은 처지의 철거민을 돕다 구속됐다. 몇 달 전 아들이 “뭐가 창피해요”라며 여자친구를 집에 데려왔었다고 얘기할 땐 “그래도 된 놈”이라며 웃다가, “우리 같은 사람들의 문제가 풀려야 이 나라가 잘산다”고 할 땐 눈가에 물기가 맺혔다.

 

 

21일 개봉한 <두 개의 문>은 김영희씨처럼 몇만원씩 낸 834명의 손길이 모여 극장 문을 열었다. 이들이 후원한 2921만8658원으로, 상영관에 제공하는 <두 개의 문> 영상 제작비, 광고선전물 인쇄비를 충당했다. 제작진은 834명을 배급위원단으로 칭하고, 영화가 끝날 때 스태프 이름을 소개하는 ‘엔딩크레디트’에 834명 이름을 모두 실었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는 수동적 수용자에서, 개봉을 가능하게 만든 적극적 참여자가 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 834명 배급위원단이 꾸려진 건 한국영화 사상 처음이다. 전국 16개관에서 개봉한 영화는 상영 8일 만인 28일까지 독립영화 흥행선인 1만명(1만1000여명)을 넘었다.

 

김일란 감독은 “용산이 잊혀 (후원자가) 너무 적으면 상처받을 수 있다고 걱정한 분도 있었는데, 영화를 보기 전에 많은 분들이 후원해 놀라웠다”고 했다.

 

용산서 남편 잃은 할머니
일당 6만원 식당 아주머니…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영화”
허리띠 졸라 개봉 후원금

 

834명엔 3만원을 낸 전재숙(70)씨도 있다. 그날, 불길에 휩싸인 비극의 현장에서 남편을 잃었고, 아들은 구속됐다. 26일 저녁 용산 집에서 만난 그는 남편 사진이 걸린 거실에서 기자를 맞이했다.

 

“며느리가 ‘어머니, 영화 안 보셨으면 좋겠어요’ 했지요. 영화가 그날 악몽 그대로이니까, 마음이 무겁고 힘들더군요. 그 추운 날 얼마나 살고 싶어 몸부림쳤을까요. 살고 싶어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 올라간 거잖아요. 뭐가 그리 급해서 그렇게 진압했을까요? 우린 힘없는 사람이잖아요.”

 

영화는 경찰특공대의 법정증언 등을 토대로 삼아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두 감독은 경찰마저 “생지옥 같았다”고 한 진술에서 무자비했던 공권력의 실체를 엿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홍지유 감독이 설명했다.

 

“법정에서 (용산참사에서 숨진) 김남훈 경사의 죽음의 책임이 누구냐는 검사 질문에 한 대원이 5초 동안 침묵하다가 농성자에게 있다고 말했어요. 저희는 5초의 침묵, 그 머뭇거림, 갈등에 굉장한 진실이 있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영화엔 유가족의 절규가 빠져 있다. 유가족 인터뷰를 넣었다가 결국 뺐다고 한다. 전재숙씨는 “우리가 빼자고 했다”고 말했다.

 

“우리의 말을 거짓이라고들 했잖아요. 돈을 더 뜯어내려고 떼쓰는 ‘떼잡이’, ‘테러범’이라고 했으니까요. 누굴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 테러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 망루에 올라간 것이라는 진실을 우리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경찰 얘기 등이 담긴 영화를 그대로 보고 믿어주길 원했어요. 이 영화는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영화입니다.”

 

인터넷 인기만화 <습지생태보고서>를 그린 만화가 최규석씨는 이른바 ‘얼굴 기부’로 영화에 동참했다. “용산참사를 진압했던 경찰이냐”고 착각할 만큼 생생한 표정을 지은 영화 포스터의 경찰 얼굴이 최규석씨다. 그는 “진압을 해버리겠다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더니 잘생긴 얼굴을 가릴 수 있었다”고 웃으며, “영화가 잘되니까 제 기부의 안목이 틀리지 않은 게 증명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화염병을 던지지 않았는데도 경찰특공대 투입이 결정됐다는 댜큐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용산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을 보기 위해 24일 오후 관객들이 서울 종로 신문로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의 극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배급위원이 된 이도 있다. ‘더 가라오케스 밴드’의 리더 김상우(35)씨는 “그래도 나는 어렵지 않게 살면서, 사회문제에 대해선 말만 하고 있다는 부채의식이 있었는데, 영화 후원을 통해서라도 (사회문제에) 참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배급위원단은 용산참사 강제진압의 진상 재규명과, 구속된 철거민들의 8·15 특별사면을 위한 여론 확산을 위해, 씨지브이(CGV)·롯데시네마·메가박스 등 복합상영관들이 상영 기회를 확대해주길 바라고 있다. 전재숙씨는 특히 “우린 그저 용산에서 살고 싶었던 사람들이었다. 용산을 다시 기억할 수 있게, 용산 씨지브이에서 영화를 틀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김영희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봐야 한다. 대통령 귀가 뚫리고, 돈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고정시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 마지막에 엔딩크레디트가 흐르지만, “눈이 침침해서”(전재숙), “철거하는 용역업자들에게 눈을 얻어맞아 시력이 나빠져서”(김영희) 자신들의 이름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은 영화를 본 이들이 어둑어둑해진 자신들의 눈을 대신해, 또다른 용산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부릅뜬 ‘두 개의 눈’이 되어주길 원하는 듯 보였다.

 

 

글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사진·영상 조소영 피디 azuri@hani.co.kr

 

 

 

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54010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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