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기획전

 

<어둠 속에 새기는 빛 - 아시아의 목판화운동 1930s~2010s>

 

Blaze Carved in Darkness: Woodcut Movements in Asia 1930s – 2010s

 

 

88년에 만든

 

제 판화 <그대여, 통일조국을 노래하라!>가

 

전시도록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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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22]

제주 4.3 70주년, 미국의 책임을 묻다!

 

제주 4.3 추념 야외조형물 <비설(飛雪)>

 

참고사진출처: 제주 4.3 평화공원


 

2018년 올해는 제주 4.3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제주 4.3 사건은 미군정기에 발생하여 대한민국 건국 이후에 이르기까지 7년 7개월 동안 지속된, 우리 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민간인 인명 피해가 많았던 비극적인 사건이다. 1947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에서 경찰의 발포로 6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자, 이에 대해 대대적인 민 · 관 합동 총파업이 일어났고, 경찰의 무차별 검속과 고문치사가 잇따랐다.

 

이러한 경찰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독선거 · 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군경 토벌대의 잔혹하고 무차별적인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제주 4.3 평화공원은 <제주4.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2000년) 제정 이후, 정부 차원의 진상 조사가 실시되고,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2003) 채택과 함께 고 노무현 대통령의 공식 사과가 이루어지면서, 2008년에 4.3 사건으로 인한 제주도 민간인 학살과 처절한 삶을 기억하고 추념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 · 인권 기념공원으로 건립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는 4.3 희생자 추념일이 법정기념일로 지정되었다. 현재 4.3 평화공원 위패봉안실에는 14,117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행방불명자표석에는 3,895기의 시신 없는 희생자 표석이 설치되어 있다.

 

제주 4.3 평화공원에는 <비설(飛雪)>이라는 제목의 야외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군경 토벌대의 대규모 초토화 작전이 벌어지던 1949년 1월 6일, 변병옥(변변생, 당시 25세)과 그녀의 두 살배기 젖먹이 딸이 봉개동 거친오름 북동쪽 지역에서 피신 도중 학살된 후, 후일 행인에 의해 눈더미 속에서 발견된 모녀의 비극적인 죽음을 추념하는 모녀상(母女像)으로 당시 억울하게 희생된 두 생명의 넋을 기리고자 제작 설치되었다.

 

4.3 70주년을 맞아 제주 4.3 희생자유족회, 제주 4.3 70주년 범국민위원회, 제주 4.3 70주년 기념사업회는 제주 4.3, 미국 책임 규명 서명운동을 통해 “제주 4.3은 미군정이 통치하던 시기에 발생한 민간인 대량학살 사건입니다. 미군정 시기와 미국 군사고문단이 한국군에 대해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던 시기에 3만 명이 넘는 제주도민이 억울하게 희생됐습니다.

 

그런데 70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도록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 아무런 말이 없습니다... 2003년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보고서>에도 4.3 사건의 발발과 진압 과정에서 미군정과 주한미군고문단의 책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제 미국은 4.3의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4.3 학살에 대한 책임을 인정, 공식 사과하고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제주 4.3에 대한 미국과 UN 등의 책임 있는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서명] 제주 4.3, 미국 책임 규명 10만인 서명 운동

 

http://bit.ly/2zPUE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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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70주년 네트워크 프로젝트

 

<공간41> "잃어버린 말"

 

 

참여작가

 

박소연, 박영균, 배인석, 양동규, 여상희,

오석훈, 전승일, 한항선, 홍진숙

 

 

전시장소 : <공간41> (서울시 마포구 동교로41길 41, 지하1층)

 

전시기간 : 2018. 03. 31(금) ~ 04. 29(일)

 

관람시간 : 월요일-일요일 10:00-18:00

 

관람문의 : 010-2311-2996 / bombomculture@gmail.com

 

 

 

<공간41> 페이스북 페이지

 

제주 4.3 70주년 프로젝트 - 잠들지 않는 남도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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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역사박물관서 당당히 외치는 제주 4.3

 

 

 

 

 

4.3 70주년 특별전

 

포스트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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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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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21]

고양 금정굴 민간인 학살 사건

 

2009년 고양 금정굴 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서 묵념을 올리고 있는 어느 청년

 

한국전쟁 시기 1950년 9.28 서울 수복 직후 경기도 고양 · 파주지역에서는 최소 153명 이상의 주민들이 단지 부역혐의가 의심되며,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적법절차 없이 경찰 · 치안대 · 태극단 등에 의해 금정굴로 끌려가서 불법적으로 집단총살 당한 후, 수직 갱도 속에 암매장되었다. 금정굴은 고양시 황룡산과 고봉산이 이어지는 중간 지점 산책로에 위치해 있으며,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수직 폐광이다.

 

1995년 9월, 희생자 유족들은 금정굴 현장에서 자체적으로 유해 발굴을 진행한 바 있는데, 발굴된 유해의 감정결과 대퇴골 153개, 두개골 74개가 확인되었으며, 희생자 중에는 여성과 어린이도 다수 포함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이와 함께 금정굴 학살지에서는 수십 발의 M1 소총과 칼빈 탄피, 포승줄로 사용한 군용 삐삐선, 도장, 교복 단추, 여성의 댕기머리, 회중시계, 각종 옷가지와 신발 등이 다수 발굴되었다.

 

국가의 존립목적은 인간존중, 사회적 약자 보호, 사회정의의 실현이며 국가권력은 폭력으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하는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국가기구인 고양경찰서가 치안대 · 태극단 등의 우익단체를 지휘하여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집단학살한 것은 명백히 반인권적인 국가범죄에 해당한다.

 

이에 2007년 6월 26일,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고양 금정굴 학살 사건이 경찰에 의한 불법적인 집단학살(Genocide) 사건이었으며, 당시 전시 계엄 하에서 경인지구 계엄사령부가 모든 상황을 통제 · 감독하고 있었기 때문에 금정굴 학살 사건의 최종 책임은 국가에 있으며, 국가가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과, 고양시가 금정굴에 화해와 상생을 위한 평화공원을 설립하고, 영구적인 유해안치소 설치를 권고하는 진실규명 결정을 하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금정굴 평화공원은 조성되지 않았으며, 2013년 유족과 고양지역 시민사회는 힘을 모아 (재)금정굴인권평화재단(www.gjpeace.or.kr )을 설립하여 희생자 위령사업과 함께 다양한 인권 · 평화운동을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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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20]

충북 분터골 민간인 학살 사건

 

2007년 제1회 청주 청원 민간인 학살 희생자 합동위령제에 참석하여 흐느끼고 있는 유족

 

1950년 7월초

경찰과 국군은 충북 청주 청원지역 보도연맹원 700여 명과

청주형무소 재소자 300여 명 등

1,000여 명의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집단학살한 후

 

충북 청원군 남일면 고은리 분터골 일대에 암매장하였다

 

2007년 7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사건 발생 57년 만에 공식적인 유해 발굴 사업을 실시하였으며

 

당시 분터골 일대에서는 70여 구의 희생자 유해와

수십 점의 탄피, 옷, 단추, 고무신 등 다수의 유품들이 수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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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com Pen 도착 기념

 

<제노사이드(Genocide) 연작> 스케치 한 점

 

타블렛은 Wacom Cintiq 22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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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진실의힘 인권상 결정문

 

 

잘 못된 시대를 만난 국민은 불행합니다. 잘 못된 국가를 만난 국민도 불행합니다.

 

분단과 전쟁의 역사는 우리와 똑같은 감정을 가진 숱한 사람들, 우리와 똑같은 가족을 가진 수많은 국민들을 까닭도 이유도 없는 죽음의 질곡 속에 난폭하게 몰아넣었습니다. 이어진 독재와 탄압의 칼날은 살아남은 유족들에게 죽음보다 더한 고통과 고문을 강요하였습니다.

 

우리는 한국전쟁의 시기에 온 한반도가 공산-자유, 좌-우 이념대결의 참혹한 폭풍 속에 놓였었음을 기억합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렵던 그 무도한 시대, 상상도 할 수 없는 끔찍한 살상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전 한반도가 살상의 나락으로 빠져들기 이전에 이미 제주, 여수순천, 문경 석달마을에서 ‘무고한’ 집단학살은 시작되었습니다. 그 서곡을 막았다면, 또 그 서막의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다면, 나아가 그 살육을 자행한 자들을 제대로 밝히고 처벌하였다면, 온 한반도로 퍼져나간 집단광기와 강물보다 많았던 눈물들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릅니다.

 

제6회 진실의 힘 인권상은 문경 석달마을 민간인 집단 학살사건의 생존자이자 진실규명 투쟁가 채의진 선생과, 민주화 이후 민간인 학살문제를 본격적인 국가와 사회의 의제로 끌어낸 정희상 탐사보도 전문기자에게 드립니다.

 

이들의 삶은 오늘의 우리에게 천부의 인간존엄과 사회 정의와 국가의 존재이유에 대해 가장 정면에서 다시 묻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채의진 선생의 가공할 피해와 필생을 바친 진실규명 투쟁의 혼, 그리고 진실 복원과 보도를 향한 정희상 기자의 발과 땀을 되살리고 기억하여 ‘생명’·‘인권’·‘자유’·‘진실’의 가치를 세우려 싸워온, 싸우는 이 땅과 세계의 모든 분들에게 함께 공통의 귀감과 위로, 상호 연대와 격려의 표상으로 삼고자 합니다.

 

***************

 

문경 석달마을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은 1949년 12월 24일, 공비 토벌을 이유로 지역을 수색정찰 중이던 국군에 의해 자행된 국가의 국민살상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국군 제2사단 제25연대 제2대대 제7중대 제2소대 및 제3소대는 경상북도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현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 석달동)을 지나다가 어떠한 정당한 근거와 까닭도 없이 마을주민을 불러내어 86명을 무차별 총살하였습니다. 전형적인 반인륜적 반인간적 국가범죄(state crime)였습니다. 석달마을 학살사건은 어떠한 반(反)국가혐의도 없는 순수국민을 국가가 최소한의 법적 근거와 절차도 없이 자의적으로 살상한 국가폭력이자 민간인 학살행위였습니다.

 

당시 석달 마을은 127명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중 86명이 사망, 12명은 중상이었습니다. 29명의 주민만이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마을 주민의 3/4이 피해를 입은 일방적이고 무참한 학살이었습니다. 두 가족은 5명 전원이, 한 가족은 4명 전원이 몰살을 당했습니다. 어떤 가족은 8명 중 7명이 학살을 당했고, 다른 어떤 가족들은 13명 중 9명, 7명 중 6명이 학살을 당했습니다.

 

사망자 86명 중 42명이 여성이었으며, 22명은 열 살 이하의 어린이였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으로서 정녕 믿고 싶지 않지만 무려 5명의 ‘피학살자’들은 세상에 이제 막 태어난 한 살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단’ 한 살입니다. 아직 이름도 없었기 때문에 전부 ‘남 아기’, ‘채 아기’, ‘박 아기’, ‘장 아기’, ‘황 아기’로 기록된 ‘단’ 한 살의 생명들이 군부대의 ‘공비토벌’전과(戰果)로, 훗날에는 ‘피해자명부’ ‘피학살자’로 기록되어야하는 이 전율할 역사 앞에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해야합니까? 언어를 잃어 말문이 막힐 뿐입니다. 열 살 이하의 어린이 22명 중 과연 누가 공비였고, 어떻게 공비활동을 하였는지 당시의 가해자들과 오늘의 국가는 대답해야합니다.

 

채의진 선생은 당시 열세 살이었습니다. 그는 할머니, 어머니, 형, 누이, 형수를 포함해 9명의 사랑하는 가족을 국군의 범죄로 창졸간에 잃었습니다. 그는 형의 시신에 가려져 간신히 집단학살의 총구를 피해갈 수 있었습니다. 그의 생존은, 국가가 국민을 적으로 간주하여 살상하는 최악의 인간지옥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 진실을 규명하라는 가족과 신의 가호였습니다.

 

사건 이후 국가는 철저히 진실을 은폐하고 억압했습니다. 1960년 4.19혁명이 왔을 때 비로소 처음으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의 노력들이 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채의진 선생과 피해자 가족들은 피해자 명부를 만들고, 관계당국과 언론을 방문하며 진실규명을 호소하였습니다. 민주정부의 국회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조사단을 꾸려 현장 조사를 나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진실과 인권은 민주주의와 함께 간다는 점을 확인합니다.

 

그러나 5.16 군사쿠데타로 등장한 군사정부는 진실을 다시 암흑에 가두고 피해자 가족과 진실규명 노력을 가혹하게 탄압하였습니다. 학살에 이은 제2차 국가범죄였습니다.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처벌을 받고, 불의가 정의를 이기는 이른바 ‘뒤집힌 진실’, ‘전도된 시대’ 상황은 계속되었습니다. 모든 진상규명 자료들은 압수되었고 합동묘와 위령비들은 국가에 의해 난폭하게 유린되고 파괴되었습니다. 유족들의 가슴은 하염없이 무너졌고 진실은 독재의 어둠 속에 다시 묻혔습니다. 인간의 최소 근본도리를 갖추려는, 자식으로서의 최소한의 제의(祭儀)와 위령행사마저 금압하는 현실은 금수(禽獸)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짓들이었습니다.

 

학살이 금기어이듯 진실도 금기어였습니다. 채의진 선생도 수배자가 되었습니다. 진실규명 노력을 하는 가족들은 체포·구금·수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군사독재의 도래와 함께 사실상 고문의 기나긴 시작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세상은 감옥이었고 국가는 폭력집단이었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한 당시의 투쟁가들을 고문하듯, 독재권력은 과거의 진실을 두려워했고 고문하였던 것입니다. 부모형제가 학살당한 진실을 드러내려는 투쟁은 이제 자신의 죽음과 고문을 각오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권력은 언제나 진실을 두려워합니다. 완전 날조된, 어디에도 근거가 없는 ‘빨갱이’·‘좌익’·‘부역’·‘친북’·‘연좌제’·‘이념’의 사슬은 채의진 선생과 가족들, 그리고 전국의 수많은 채의진들의 나날의 삶을 옥죄었습니다. 제주 4.3, 거창, 노근리, 산청, 함평, 고양... 석달마을의 서곡이 전국화 보편화하였듯, 진실과 진실활동가들에 대한 독재권력의 억압도 전국적 보편적이었습니다. 물론 통곡도 슬픔도 전국적 일상적이었습니다.

 

채의진 선생은 굴하지 않았습니다. 울화병이 돋지 않으면 안 될 미칠듯한 회한과 불의의 나날들의 연속에서도 선생은 마음을 단련하고 자강불식하면서 감연하게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자신의 천직인 교직생활도 정리한 채 선생은 서각공예를 통해 개인적인 동시에 사회적인 울분을 내면적 미학적으로 승화하려 노력하였습니다. 천직의 포기는 생존의 위기를 뜻합니다. 진실규명 투쟁은 그에겐 곧 생애를 건 필생의 과업이었던 것입니다. 전생을 걸었기에 그의 내면투쟁이 개인적 비극을 넘어 인간적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그는 시대의 많은 방관자들을 부끄럽게 만들고, 또 감동을 줍니다. 감당할 수 없는 비극에서 생의 의지를 추슬러 다시 일어서고야 마는 인간 채의진과 유족들의 저 내강(內剛)한 모습은 다른 많은 민간인 학살유족들과 고문피해자들의 감연한 일어섬을 떠올리게 하여 우리를 끝내 눈물로 몰아갑니다. 피해유족들과 고문피해자들의 이토록 형형(炯炯)한 영혼 덕분에 오늘의 우리는 그들에게 빚 진채 살아가고 있음을 또렷하게 깨닫습니다. 하여 우리 모두는 그 거듭난 영혼들의 도덕적 비약 앞에 머리를 숙입니다.

 

채의진들의 일상은 안온과 건강과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러나 끝끝내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민주화와 함께 선생은 수없이 많은 탄원과 청원과 방문과 집회를 주도하고 참여하였습니다. 그의 모습은 여러 학살 현장과 집회의 처처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인간 채의진의 삶은 소극적 피해자에서 능동적 진실규명 투쟁가로, 적극적 연대활동가로 거듭났습니다. 서울과 문경, 전국 학살지를 숱하게 방문하였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자료수집을 위한 미국방문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진실규명과 연대를 위한 그의 의지는 제한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의 진실규명 투쟁범주는 석달학살 사건과 개인의 고통을 넘어 전국의 민간인 학살사건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개인에서 시민, 부분에서 전체로 도약이었습니다. 각지의 유족회를 함께 꾸리고 서로 돕고 지원하고 전국적 연대조직을 힘 있게 밀고 나갔습니다. 전국의 많은 석달마을 유사-동질 사례들이 결집하였고, 피해자와 연구자와 언론인과 활동가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마음이 모이고 뜻이 모이자 국가는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중앙 정부기구를 출범시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진실복원을 향한 노력은 그의 삶 전체였습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자신의 온 영혼과 온 삶을 바쳐 기도하는 재기(齋祈)의 절대 소명,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삶과 진실이 숭고한 하나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채의진 선생을, 억압을 견디고 진실과 인간존엄과 인권을 향한 오롯한 삶으로 기리려는 참 뜻이기도 합니다.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드리는 바입니다.

 

***************

 

그 기나긴 길에서 공동 수상자 정희상 기자는 공론화와 연대의 결정적 고리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정희상 기자는 월간 <말>지 기자로 일하던 1980년대 말부터 석달마을을 비롯한 전국의 민간인학살 사건들을 발로 뛰며 취재하고 우리 사회에 이 문제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려 앞장서 적극 노력해왔습니다. 진실을 향한 땀의 결정체인 그의 탐사보도는 언론과 학계, 정부와 시민단체의 무관심과 무도덕을 질타하고 관심과 참여를 촉발하는 중대계기로 작용하였습니다.

 

특별히 그의 연속적인 발굴기사들은 어둠 속의 사건들에게 진실의 빛을 비추었고, 유족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 주었으며, 개별적 피해에 머물던 사례들을 전국적 일반적 사건으로 인식시키고 연대의 손길을 내밀게 한 소통의 계기였습니다. 채의진 선생을 포함한 유족들에게 그는 진실규명 과정에서 동료이자 동지였습니다. 권력의 편이 아닌 진실의 편에 섰기 때문입니다.

 

정희상 기자는 채의진 선생과 함께 석달마을 학살사건의 진실규명을 향한 기나긴 도정에서 유족들의 아픔을 함께 슬퍼하고 함께 알리고 공감의 가슴을 열어준 참 도반에 가까웠습니다. 정희상 기자는 그것이 “살아있는 자로서 외면해서는 안되는 사명감”이었다고, 한 인간의 높은 윤리적 자세로 고백합니다. 이 땅의 무너진 기자정신을 되살려낸 소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의 보도를 함께 기리려는 소이입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

 

제6회 진실의 힘 인권상을 드리면서 우리는 채의진 선생의 삶이 상징하는 한국현대사의 핵심적인 고난과 간구, 어둠과 빛 전체를 기억하고자합니다. 국가에 의한 국민학살, 망각강요, 이념적 낙인과 매도, 진실은폐와 유족활동의 억압, 공동체와 언론의 오랜 외면, 역사적 자각과 고독한 자기투쟁, 생업과 생존의 위기, 시민적 연대와 희망, 진실규명의 성공과 한계, 그리고 남은 숱한 과제들을 기리고 확인함으로써 이 상이 우리 공동체가 드리는 작은 감사와 속죄의 징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채의진 선생의 과거 피해와 진실규명 노력 때문에만 이 상을 드리는 것이 아님을 또한 정직하게 고백드립니다. 거기에는 채의진 선생의 평생의 비원(悲願)을 담아 오늘의 우리사회의 진실단계와 인권과제를 엄중히 돌아보려는 다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국가범죄라는 진실이 명백히 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누구 하나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지금 이 땅의 부끄러운 도덕수준이고 양심지표입니다. 학살과 억압에 가담한 모든 가해자들의 양심어린 사과와 참회를 촉구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사회가 용서와 관용, 화해와 상생의 공동체로 나아가는데 최소한의 도리를 다하기를 같은 인간으로서 무겁게 호소합니다.

 

게다가 학살을 자행한 국가는 아직도 배상과 보상, 공식사과, 추모시설 건립, 치유와 치료보장 등 기본적인 국가책임과 의무를 이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학살과 억압에 이은 세 번째 국가범죄나 마찬가지입니다. 국가는 석달마을을 포함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해 전면적인 진실규명, 명예회복, 배상과 보상, 공식사과, 합동 및 개별 추모시설 건립, 치유와 치료보장을 위한 책임과 의무를 성실하고도 철저하게 이행하여야 합니다. 그 길만이 민간인학살과 진실규명 억압이라는 두 번의 범죄를 갚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 나라가 학살과 국가범죄와 독재와 억압을 넘어 미래에는 진실, 화해, 평화, 인권 교육의 세계범례로 기록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끝으로 우리는 석달마을 유족일동이 1993년 5월 17일 국가에 제출한 탄원서에서 했던 말을 함께 기억하고자 합니다. “역사는 진실이어야 하며 그 진실은 곧 진리입니다. 잘못된 역사의 진실은 반드시 밝혀지고 상처는 꼭 치유되어야합니다.”

 

우리는 유족을 대표하는 채의진 선생을 통해 이 상을 위로와 연대, 존경과 감사를 담아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집단 학살 사건의 모든 유족들에게도 함께 드리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채의진들이 가고자 했던 진실과 정의, 해원과 상생, 화해와 치유가 남한과 북한, 그리하여 전체 한반도와 아시아와 세계를 아우르는 보편정신이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국가와 국민의 바른 일을 앞서 대신 감당해준 두 분에게 이 공동체와 사회를 대신하여 늦은 속죄와 깊은 경의를 함께 표합니다. 그동안 많이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감사했습니다.

 

 

재단법인 진실의힘

제6회 진실의 힘 인권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조은 | 위원. 강용주 권인숙 김선주 김정인 박명림 박미옥 이삼성 조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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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망자의 넋을 달래는 춤사위"

 

 

전승일

 

 

 

87년 6월 민주항쟁은

 

박종철 고문살인 조작·은폐 규탄 투쟁에서 시작되어

전두환의 반역사적 4·13 호헌 조치에 맞서

민주헌법과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향한

 

4·19 혁명 이후 최대 규모의 '시민항쟁'이었다

이 6월 항쟁의 '절정'에서

망자(亡者)의 넋을 달래는 진혼굿을 벌인 한 춤꾼이 있었다

 

바로 박종철 열사와

직격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처연하게 춤사위를 펼친 이애주(서울대 사범대학) 교수이다

 

승무 예능 보유자 한영숙씨로부터 사사받은 이 교수는

승무에서 우러난 경기도당굿거리 진혼굿 춤을 통해

 

열사의 원혼을 위무하고 시대의 아픔과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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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한 컷>

 

"노동자의 어머니"

 

 

전승일

 

 

 

1970년 11월 13일

 

한 청년 노동자가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몸에 석유를 끼얹고 분신했다

당시 22살이었던 그의 이름은 바로 '전태일'이다

 

그가 열악한 노동환경에 맞서 분신 항거 한 이후

청계천 평화시장에는 청계피복노동조합이 생겨났고

다른 공장들에도 노동조합이 결성되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그의 분신은 노동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본격적인 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씨는

'노동자의 어머니'로 불리며

아들의 뜻을 이어 노동운동에 전념했고

2011년 9월 3일, 82세의 나이로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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