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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① 푸른 창문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by 미메시스TV 2014. 9. 13.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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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① 푸른 창문




등장 인물


선옥이 떠난 거리에서…태길은 다시 길 잃은 개가 되었다

▶ 1984~1987년, 형제복지원에 갇힌 박태길의 삶을 전합니다. 3년의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었고 그가 사는 오늘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입니다. 형제복지원은 파문을 일으키며 세간에 알려졌다 잊혀지기를 반복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복지원에 갇혔던 수만명의 인생과 기억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박태길씨는 현재 부산 참다움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기사는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취재와 자료 수집을 통해 쓰여졌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mayseoul@naver.com

쇠창살 밖으로 검은 하늘에 흰 달이 걸려 있다. 희미하게 달빛을 받은 캄캄한 쇠창살 안에는 칼로 자른 듯 엄격하게 줄지은 2층침대마다 아이들이 반듯하게 누워 있다. 낮의 노동과 잔혹한 질서를 잊고 80명의 아이들은 허공을 향해 눈을 감았다. 방문은 바깥에서만 열 수 있는 이중 잠금장치로 막혔고 쇠창살이 창문을 빽빽하게 감쌌다. 누구도 이곳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다. 평화롭진 않지만 안전한 시간, 폭력과 욕망 착취마저 잠 드는 시간에도 이 공간은 통제돼 있다.

모두 잠이 들어버린 시간에 열다섯살 태길은 홀로 깨어 있다. 이곳 복지원의 원생들은 길거리를 다니다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차에 태워져 잡혀오거나 가족들이 위탁해 맡겨졌다. 가족이 있든 없든 복지원은 평등하며 불평등하다. 원생들은 모두 푸른색 운동복과 실내화를 신고 여자, 남자 할 것 없이 짧은 커트 머리를 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같은 식판에 같은 음식을 담아 먹었고 같은 교육을 받고 노동했으며 똑같은 취침 시간이 주어졌다. 복지원 원장 밑으로 중대장, 소대장, 조장으로 이어지는 구조에서 어른 아이를 가리지 않고 원생은 가장 밑바닥 계층이다.

이 거대한 감옥을 지키는 관리자들 또한 처음에는 복지원에 붙들려 왔다가 도망치지 않게 길들여진 사람들이다. 복지원 입구의 높고 단단한 철문을 지키는 경비원, 원장의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아차리는 충직한 중대장, 중대장의 아래에서 탈출하지 못하게 원생들을 때리는 소대장, 그리고 소대장 밑에서 청소를 하거나 물을 긷고 소대장 흉내를 내는 조장들은 24시간 원생들을 통제한다.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복지원은 철공소, 식당, 병동, 교회, 목욕탕, 학교, 작업장 같은 시설이 모두 갖춰진 작은 사회다.

태길은 수천명의 원생 가운데 남자 아동 소대의 소대장 김충식을 돕는 조장이다. 그 또한 처음부터 야만적인 질서를 만드는 요원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창살 밖 세상을 꿈꾸지 않는다. 꿈꾸지 않는다기보다 헛된 희망 같은 건 주머니 속에 꼬깃꼬깃 집어넣고 꺼내지 않고 있다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탈출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고 희망의 대가는 잔혹했다.

소대장 충식의 충직한 부하가 되기 두어달 전, 태길은 탈출을 시도했다가 형제원 원장 박인근한테 죽도록 얻어터졌다. 탈출을 시도한 그날, 이곳 관리자의 말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태길과 복지원 야간중학교 1학년 친구들 다섯명은 몰래 철공소에 들어가 연장을 훔쳤다. 탈출하기 위해 도구가 필요했다. 태길과 아이들은 형제원 담장을 넘으면 갈아입을 사복과 신발도 챙겼다. 그 시간, 야간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빼고는 모두들 복지원 내부의 교회에서 저녁 6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희망이 코앞으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적어도 ‘얼빵한’ 한 놈이 자기 키만한 쇠막대를 들고 철공소를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아이들이 철공소를 나왔을 즈음 때마침 멀리서 다가오는 철공소 반장과 눈이 마주쳤다.

반장은 철공소와 떨어진 곳에서 태길 쪽을 주시하며 명령했다. “이번 일은 없는 일로 할 테니 가지고 있는 거 다 내려놓고 손들어.” 태길과 아이들은 가방 안에서 연장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들었다. 그때였다. 멀리서 반장의 눈빛 신호를 받은 철공소 저 아래의 경비원들이 달려와 아이들을 순식간에 잡아챘다.

태길은 수천명 원생 가운데 
소대장 김충식을 돕는 조장이다 
조장의 임무는 간단하다 
소대장한테 못 기어오르도록 
때리거나 기합을 주는 일이다

어둠 속에서 곰이 머리를 숙였다 
“한번만 봐주세요, 도망치게요” 
태길은 이상한 대답을 해버렸다 
“그래?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곰은 순식간에 환풍기 속으로…

아이들은 복지원 꼭대기에 있는 새마음교회로 끌려갔다. 예배당 앞쪽에서는 수요일 저녁 예배가 진행되었고 태길과 아이들은 뒤쪽에 꿇어앉았다. 박인근 원장이 태길 앞에 나타났다. 원장이 바지 주머니에서 검은색 가죽장갑을 천천히 꺼내 장갑 안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복서의 전조였다. 복지원의 링 위에서는 심판이나 규칙, 경쟁자가 없었다. 승리자는 언제나 원장 박인근이다. 예배당에 꿇어앉은 태길과 아이들은 박인근이 날리는 주먹과 발차기를 저항 없이 받아들였다. 태길과 아이들은 바닥에 쓰러졌다. 원장의 주먹과 발이 아이들의 머리나 가슴팍에 떨어지는 소리 사이로 나긋나긋한 임영수 목사의 설교가 들렸다.

찬송가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태길은 정신을 잃어갔다. 자비와 용서, 회개의 설교가 예배당 앞쪽에서, 학대와 응징이 예배당의 뒤쪽에서 벌어졌다. 목사를 향해 앉은 원생들은 등 뒤에서 구타 소리가 들렸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공포스러운 순간에 고개를 돌려 똑바로 응시하는 것은 복지원에서 위험한 일이었다. 모른 척하거나 외면하는 일은 안전했다.

태길과 아이들은 근신 소대에 끌려갔다. 태길처럼 도망을 치려 했거나 복지원의 질서에 반항한 자들이 소집된 곳이다. 어른 원생들은 식사와 취침 시간을 빼곤 미용실, 목공소, 포클레인, 가구, 나전칠기, 미장, 용접, 선반, 뜨개질, 봉제실에서 일을 했다. 철문 밖에서 트럭이 들어와 복지원 안에서 생산한 물건을 싣고 갔다. 그러나 이 물건을 만든 원생들은 월급을 받지 못했다. 어린이나 청소년은 주로 작업에서 배제됐지만 도망치다 걸리면 그때부터 개고생이 시작됐다.

태길은 근신 소대에 배정된 날부터 온종일 커다란 돌을 깨고 손바닥 위에 놓으면 훅 날아오를 만큼 부수었다. 새벽 다섯시에 일어나 해가 질 때까지 돌을 깨는 일은 성인 남성에게도 힘에 부쳤다. 밥을 먹으려고 숟가락을 들면 손이 덜덜 떨렸다. 쉬고 싶을 때에도 등 뒤에서 소대장들이 감시를 했다. 연장은 부실하고 조악했으며 돌은 단단했다. 태길처럼 탈출에 실패한 어른들은 쌀포대를 뒤집어쓰고 식당 앞에 서 있는 벌을 받았다. ‘나는 도망치다 붙잡혔습니다.’ 이렇게 쓰인 쌀포대를 입고서 식당 앞에 서 있으면 원생 수천명이 식사 시간마다 지나쳐 갔다. 탈출 실패자들은 화장실마다 똥을 푸러 다녔다.

한달간의 혹독한 교화 작업을 끝내고 태길은 남자 아동이 사는 27소대에 배정을 받았다. 군인들처럼 각을 잡고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이는 제식훈련을 하던 태길을 소대장 김충식은 눈여겨봤다. 소대장 충식은 태길을 조장으로 발탁했고 태길은 거절하지 않았다. 완장을 찬 태길은 달라졌다. 소대장들의 상징인 각 잡힌 야구모자와 팔에 끼는 토시, 몽둥이는 없었지만 아이들에게 기합을 주거나 괴롭혔다. 소대장 충식이 두드려 팬 꼬맹이들의 얼굴에서 피를 닦으며 뒤처리를 했다. 태길은 소대장 충식의 충직한 동료이자 하수인이 되었다. 소대장 충식은 악독하기로 유명했지만 조장 태길에게는 관대했다.

태길이 오늘 밤, 홀로 깨어 있는 것도 도망치려는 아이들을 막기 위해서였다. 물론 태길 혼자 밤을 새우는 건 아니다. 원생들은 1시간에 한번씩 교대를 바꾸며 탈출자들을 서로 감시했다. 밤교대 근무자는 사전에 알려주지 않았다. 소대장이 매일마다 그날의 야간 근무자를 지정했다. 그날도 태길에겐 특별할 것 없는 지루한 근무였다. 적어도 ‘곰’ 녀석이 깨어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밤 열두시쯤 됐으려나. 아니, 새벽 한시였는지도 모르겠다. 느려터진 행동으로 사람 답답하게 만들던 곰 녀석이 부스스 침대에서 일어나 머리를 쳐들었다. 이 밤에 깨어나는 아이들은 변기에 똥을 싸거나 오줌을 갈기러 가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이 없다. 한데 녀석이 변기가 아닌 태길에게 다가왔다. “한번만 봐주세요.” 녀석이 태길에게 다가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얼굴을 하고 덥석 사정을 한다. 곰은 태길보다 두세살 어렸다. 정확한 나이나 이름은 몰랐다. 어차피 친해져 봤자 이 소대에서 저 소대로 끊임없이 옮겨지며 헤어질 사이. 게다가 서로를 감시해야 했기에 우정이라는 것이 복지원에서 깊게 자라날 일도 없었다. 어둠 속에서 곰이 머리를 조아리며 태길에게 속삭였다.

“한번만 봐주세요.”

“뭘 봐줘? 말해봐라.”

“도망치려고요.”

태길은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일반 원생도 아닌 조장에게 도망을 갈 테니 봐달라고 말하는 겁대가리 없는 행동이라니. 곰 같은 녀석이나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태길은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대답을 해버렸다.

“그래? 할 수 있으면 해보든가.”

만에 하나 곰이 도망친다면 탈출을 방조한 태길도 무사할 수 없었다. 그날 밤 태길이 왜 그렇게 쉽게 승낙을 했는지 스스로 설명이 안 됐다. 늘 탈출을 꿈꾸고 도모하던 사람들도 이곳에 순응하고 관리자로 변모하지 않았던가. 사실 곰 같은 미련한 녀석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복도로 향하는 이중 잠금은 어떻게 뚫을 것이며, 창에는 쇠창살이 있어 나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이 방에 소대장 충식이 같이 누워 자고 있었다. 어쩌면 충식이 이불 속에서 이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을 거란 생각에 오싹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태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곰은 유령처럼 소대장 책상으로 걸어가 서랍을 열고 뭔가를 꺼냈다. 드라이버였다. 바보 같은 곰은 소대장 책상에 드라이버가 있다는 사실을, 태길도 몰랐던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곰이 살금살금 환풍기로 걸어가 드라이버를 갖다댔다. 툭, 환풍기가 뜯겨 나가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태길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요동쳤다. 소대장 충식이 깬다면 모두 살아남기 어려웠다. 소대장 충식을 보니 아직은 미동이 없었다.

그때야 어둠 속에서 다른 아이들 셋이 이불 밖으로 머리를 쳐들었다. 곰과 같이 탈출하려고 약속했던 아이들은 태길과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태길이 허락하면 환풍기 밖으로 도망칠 것이고 태길이 곰을 작살내면 잠을 자는 척, 모른 척 하려고 했다. 바보 같은 곰은 아이들을 대표해 그 모든 위험 부담을 졌을 것이다.

쉽게 뜯어진 환풍기 사이로 밤의 공기가 밀려들었다. 곰이 환풍기로 머리를 집어넣더니 허리가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곰이 환풍기 밖으로 사라져버렸다. 이 지옥 같은 감옥을, 곰은 간단한 드라이버 하나로 뚫고 도망쳐버렸다. 나머지 아이들 셋도 차례차례 환풍구 사이로 사라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태길은 허망하게 뜯어진 환풍구를 바라봤다. 탈출을 연료 삼아 태웠던 의지가 지난번 실패로 사그라지고 소대장 충식의 충직한 동료로 살던 태길에게 쉽게 뚫린 환풍구는 자극을 주었다.

태길도 환풍기 쪽으로 살금살금 걸어가 어깨를 대었다. 열다섯 태길이 나가기엔 너무 작은 크기다. 태길은 뜯긴 환풍기를 대충 걸쳐놓고 다음 당번을 예정 시간보다 10분 일찍 깨웠다. 곰과 약속을 했던 것인지 우연히 환풍기를 목격한 것인지 다음 당번도 침대에서 일어나 구멍 사이로 사라졌다. 태길은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이불 위에 너부러져 뒤척이다 코를 고는 척 드르렁거렸다. 태연한 척 노력했지만 심장을 방망이질하는 소리만은 진실했다.

20분쯤 지났을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대장 충식의 또 다른 충직한 조장, ‘똥개’였다. 똥개는 환풍기를 보고 고함을 질렀다. 잠든 소대장이 일어나 상황을 파악하고 중대장을 불렀다. 한밤에 아이들은 모두 깨고 중대장은 27소대에 달려왔다. 심문이 시작됐다. 곰과 아이들이 빠져나가는 걸 본 사람은 없느냐, 탈출 낌새는 없었느냐. 태길은 졸린 눈으로 아무것도 모른다고 잡아뗐다. 소대장 충식은 태길에게 더는 따지지 않았다. 태길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그날 밤이 새도록 기합을 받았다. 곰과 아이들을 창살 밖으로 내보낸 후회는 들지 않았다. 아이들을 때릴 때 저버렸던 미안함과 죄책감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1985년 어느 날 밤.



http://www.hani.co.kr/arti/SERIES/624/653450.html?recopick=5


한겨레 / 201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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