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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② 굶주림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by 미메시스TV 2014. 9. 1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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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mayseoul@naver.com

생명은 질기다. 지옥 끝으로 떨어져도 악마들에게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때리고 맞는 장면을 매일 보다 보면 어느덧 견디게 되고 무뎌졌다. 시간은 사람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식당에서 수용자들이 맞는 걸 보아도 배가 고팠고 배가 고프면 숟가락을 들고 식판에서 밥을 떠먹었다. 복지원에서 사람이 두들겨 맞는 일은 은밀하지 않다. 복지원의 세세한 규칙은 헌법보다 존엄했고 이를 어길 때에는 학대와 폭력이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원장 박인근이나 그의 하수인들은 원생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수용자를 때릴 권한을 태어날 때부터 가진 사람처럼 굴었다.

이곳 형제복지원은 거대한 성이다. 부산시 북구 주례동 산18-1번지, 6820평의 복지원에는 각종 시설들이 질서 있게 배치돼 있다. 교회, 내무반, 직원 사택, 선도실, 회의실, 작업보도공장, 식당, 창고, 취사장, 세탁소, 이발소, 개금국민학교 분교, 야간중학교, 목욕동, 사무실, A·B·C병동, 지하 냉동실 1~4호실이다. 수용자들이 등에 돌을 지고 꼭대기를 오르내리며 만든 건물이다. 원장 박인근의 경비원들은 24시간 복지원의 철문을 지키며 누구도 허락 없이 들어가거나 나가지 못하게 했다.

복지원의 생활은 매일이 반복적이다. 새벽 5시 기상, 5시30분 예배, 6시 점호, 6시30분 구보, 7시 아침 식사, 8시 노동…. 원생들은 그곳의 질서에 순응케 하는 각종 기합을 받았다. 한강철교, 히로시마 타기, 원산폭격, 통닭구이, 김밥말이. 한강철교는 두 팔을 바닥에 짚고 엎드려뻗쳐서 뒷사람의 어깨에 다리를 올리는 기합이다. 두번째 사람이 세번째 사람에게, 세번째 사람이 네번째 사람에게, 네번째 사람이 다섯번째 사람에게. 원생들이 똑같은 자세를 취하면 소대에는 사람 다리로 연결된 긴 철교가 형성됐다. 한 사람이라도 철교를 무너뜨리면 기합의 강도는 더 세졌다. 히로시마 타기는 물구나무를 서서 발을 2층침대에 올리는 일이다. 기합을 받는 시간이 오래될수록 머리에 피가 쏠리고 위 안의 음식물이 쏠려 구토가 나올 것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김밥말이는 원생들이 나란히 누워서 돌돌 구르면서 김밥을 마는 것인데 김밥의 상단을 차지하는 원생들이 오래 있으면 밑에 깔린 사람은 숨이 막혔다. 한강철교, 통닭구이, 원산폭격, 조장들은 가만히 앉아 이 자세에서 저 자세로, 저 자세에서 이 자세로 바꿔가며 벌을 줬다.

쥐나 지네를 잡아먹던 원생들은 
배고픔 앞에서 비굴해졌다 
원장 아들은 가끔 사택 창밖으로 
라면 수프나 십원짜리를 던졌다 
태길도 두 발을 들어 뛰어올랐다

어떤 언니들의 배는 달처럼 
둥글게 부풀었다 가늘어졌다 
영숙 언니는 몇 번이나 그랬다 
아무 데서나 훌훌 옷을 벗으며 
괴성을 지르는 일이 잦아졌다

기합의 이유는 아주 사소한 것이었다. 토요일 오전마다 원장 박인근이 각 소대를 돌며 위생 상태 등을 점검하는 내무 사열을 하는데 그때 금주의 실천사항을 외우지 못했다거나 위생 상태를 지적받으면 그날로 끝장이었다. 소대장들은 원장 박인근에게 벌벌 기었다. 그들 또한 원장 박인근으로부터 체벌을 받았다. 이불을 제대로 개지 않았다거나 행동이 굼뜨거나 단순히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도 소대장이나 조장들은 원생들을 구타했다.

복지원에 갇혀 받아먹는 것들은 매일 같았다. 전어젓과 양념된장은 늘 식판에 올랐다. 말이 전어였지 썩은 전어를 가져와서 삭힌 희멀건 액체였다. 양념된장에서 된장 맛은 나지 않았다. 딱히 어떤 맛이라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박 원장은 수용자들의 식사가 1식 3찬이나 된다며 외부 세계에 자랑했지만 3찬 가운데 2찬은 양념된장, 전어젓이었다. 선짓국도 신물나게 나왔다. 선지를 넣었다는 물에선 아무 맛이 나지 않았다. 원장 사택 근처에 있는 밭에서 쬐그만 월남고추가 자랐다. 가끔 태길이 그 고추를 손에 쥐게 되는 날이면 밥 한그릇을 꿀처럼 먹었다. 된장이라고 할 수 없는 양념된장이나 전어젓에 비해 월남고추는 복지원에서 먹을 수 있는 가장 신선한 음식이었다. 그나마 먹을 만한 게 콩국과 빵이었다. 빵을 받는 시간에 원생들은 긴 줄을 섰다. 빵 한 개를 손에 더 넣으려다 들키면 혼쭐이 났다. 소대장들은 빵을 더 가져가도 괜찮았다.

몇몇 수용자는 쥐나 지네를 잡아먹었다. 달고 단 고기 맛이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굶주림을 덜어보려고 했다. 산에 지어진 복지원 꼭대기에는 교회와 원장 박인근의 사택이 붙어 있었다. 가끔 사택에선 고기 굽는 냄새가 풍겨 나왔다. 사택에서 풍겨 나오는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며 복지원 꼭대기에서 아래 세상을 내려다보면 손에 닿을 것 같았다. 저 아래 슈퍼마켓과 목욕탕 굴뚝, 주택과 지나다니는 자동차들…. 한발 내디디면 닿을 것 같은데 소리치면 들을 것 같은데 철창 밖 세상은 우리가 이유도 없이 이곳에 감금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세상은 우리들이 감금된 것이 아니라 보호받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외부 손님들은 우리를 자유롭게 접촉하지 못했다. 복지원 직원들은 손님들을 데리고 다니며 다양한 건물들을 보여주었고, 손님들은 그 무한한 질서에 감탄을 금치 않았다. 외부 손님들이 올 때면 보이지 않는 공간에 우리들을 보내기도 했고, 늘 입는 추리닝이 아닌 사복을 입혀 전시하기도 했다. 어린이날이나 명절 같은 특별한 날에 손님들이 가고 나면 귤, 사탕, 초코파이가 담긴 비닐봉지를 한 개씩 받았다. 그 봉지에 든 음식을 아껴 먹으려고 침대 같은 곳에 숨겨두었다가 없어지기도 했다. 그럴 때는 원생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손님들이 올 때만 잠깐 입혔다 뺏어가는 옷들은 복지원 내부 봉제공장에서 원생들이 만든 것이었다. 원장은 복지원 내부의 공장에서 만들어진 물건을 바깥세상에 내다 팔았는데 우리는 얼마에 팔리는지 알지 못했다. 태길도 국민학교 운동회장에서 아이들이 박을 터뜨릴 때 쓰는 콩주머니나 텐트를 만들었다.

우리들은 1년 365일 늘 같은 파랑 추리닝을 입었다. 신기하게도 매일 똑같은 것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하루를 살다 보면 시간개념이 흐릿해졌다. 지나간 사건은 기억이 났지만 그게 어느 계절이었는지, 몇 월이었는지는 잘 기억에 남지 않았다. 하루는 사라진 아이가 우리에게 먹을 걸 던져주고 달아났다. 쥐도 새도 모르게 복지원을 탈출했던 은희가 형제원 담벼락에 갑자기 나타났다. 열살쯤 됐으려나, 그 애가 어떤 경로로 뒷동산에 들어왔는지 모르지만 아마 복지원을 둘러싼 산을 타고 왔을 것이다. 흰 블라우스에 치마를 입은 은희는 복지원 담벼락 너머에서 초코파이가 가득 담긴 봉지를 던졌다.

“배고프재? 너거 먹어라!”

은희의 갑작스러운 등장은 한 편의 영화 같은 것이어서 초코파이라면 환장하는 아이들도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만 봤다. 정신을 차리고는 떨어진 초코파이를 줍느라 정신없었지만. 복지원 경비원들이 화들짝 놀라 달려갔다. 누구도 날쌘 은희를 잡지는 못했다. 그 아이가 어떤 경로로 복지원에 나타났다 사라졌는지는 지금도 모를 일이다.

굶주림은 사람을 동물로 만들었다. 낮은 비루했고 밤은 악랄했다. 남자들은 성욕에 굶주렸다. 수천명의 수용자들은 남자와 여자로 구별됐다. 멀리서 지켜만 볼 뿐 서로 이야기는 나눌 수 없었다. 유일하게 여자들을 가까이서 대할 수 있는 곳은 복지원 내부의 국민학교 분교와 야간중학교, 식당이었다.

성에 굶주린 소대장들은 밤이 되면 아이들이 누운 침대 위에 기어 올라가 팬티를 벗기고 성기를 끄집어내어 엉덩이에 밀쳐넣었다. 화장실로 불러들이기도 했다. 밤에 일을 치른 아이들은 낮이 되면 제대로 걷지 못하고 절룩거렸다. ‘후장 따였다.’ 복지원 사람들은 그렇게들 표현했다. 아침에 누군가 절뚝거리면 후장을 따였다는 걸 알면서도 서로 묻지 않았다. 그저 짐짓 모르는 체 넘어가는 게 편했다. 후장 따인 엉덩이 밖으로 괄약근이 삐져나왔고 며칠이 지나도록 쉽게 낫지 않았다. 태길은 우연히 잠에서 깨어 옆 침대에서 후장이 따이는 걸 보기도 했다.

일주일에 한번 복지원 꼭대기의 새마음교회에서는 인민재판이 열렸다. 재판장도 검사도 원장 박인근이다. 공정할 수 없었다. 후장을 따인 아이가 어른을 유혹한 죄를 뒤집어쓰고 고백하기도 했다. 소대장에게서 후장을 따인 어떤 아이는 중대장에게 신고했다가 뺨을 얻어맞았다. 짱구 소대장, 개눈깔 소대장은 아이들 엉덩이에 성기를 집어넣는 것으로 유명했다.

배고픔은 우리를 비굴하게 했다. 박인근 원장의 아들은 이따금 사택 창문 밖으로 라면 수프(스프)나 십원짜리를 던지는 장난을 쳤다. 그 아이는 수프 하나를 받으려고 날뛰는 원생들을 관찰했다. 간혹 사택 1층 문 앞에서 수프를 던져놓고 급하게 문을 잠갔다. 아이들은 떨어지는 수프를 잡아채려다 부딪치고 뒤엉켰다. 수프가 던져지면 배고픈 우리는 자동적으로 먹기 위해 뛰어올랐고 서로 가지려고 싸워야 했다. 하늘에서 라면 수프가 내릴 때마다 태길도 두 발을 들어 뛰어올라 잡아채었다.



http://www.hani.co.kr/arti/SERIES/624/653451.html?recopick=5


한겨레 / 201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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