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③ 프로야구와 장례식




박태길씨가 부산 중구 광복동 용두산공원을 걷고 있다. 박씨는 용두산공원과 인연이 깊다. 1984년 형제복지원 직원한테 끌려간 곳이 용두산공원이었고, 복지원을 탈출한 뒤 몇년이 지나 자신을 때리던 소대장들을 우연히 다시 만난 곳도 용두산공원이다. 부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불행은 지극히 평범한 날에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살던 집이 사라지며 믿었던 관계들이 파괴된다. 불행이 뿌리째 뽑아버린 인생들은 토양을 잃고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나 도시의 아무 곳에 내던져진다. 헐벗은 것들이 다시 뿌리를 내려 보지만 쓰레기나 아스팔트를 뚫으려 할수록 상처가 생긴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보라고 말하는 신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날이 있다.

태길의 불행은 1983년 프로야구 시즌에 찾아왔다. 그가 복지원에 납치되기 1년 전, 부산은 프로야구로 물들었다. 가게마다 프로야구 중계가 나왔다. 식당 구석 텔레비전에서 야구 중계가 나오면 모르는 사람들도 롯데를 응원하며 한 팀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5월의 어느 토요일, 롯데와 해태가 경기를 치르는 날 태길과 친구들은 국민학교 6학년 수업을 마치고 길을 걸으며 경기 결과를 예측했다.

“롯데하고 해태하고 붙으면 누가 이기겠노?”

“롯데가 이기지. 인마, 말이라고 하나? 내기할까?”

그날 롯데와 해태가 프로야구 경기를 벌이지 않았다면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을 아주 평범한 토요일이었다. 가방을 멘 태길과 친구들 곁으로 흰색 병원 응급차가 급하게 달렸다.

“저 차 봐라. 사람 죽은 거 아니가?”

“그런갑다, 야.”

태길이 친구들과 헤어져 아파트 앞에 다다랐을 때 식육점 가게 아주머니가 태길을 급하게 불러 세웠다. “느그 어머니 병원에서 오셨다. 빨리 들어가 봐라.”

방금 전 태길을 지나쳐 가던 흰 차, 누가 죽는가 보다 말했던 차는 영도구 영선동 ‘미니아파트’로 도착해 엄마를 내려주고 떠난 뒤였다. 태길은 아파트 301호로 뛰어올라갔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버지와 이모들이 있다. 눈을 감은 엄마는 힘없이 바닥에 누워 있다.

“엄마, 엄마.”

아무리 불러도 엄마는 눈을 뜨지 않았다. 얼굴을 만져도 미동이 없다. 엄마는 초조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1년 만에 집을 찾아와 아들에게 말 한마디를 뱉지 않았다. 엄마는 1년 전부터 백혈병을 앓았다. 부산 중구의 메리놀병원이라는 곳에 1년간 입원했지만 차도를 보이지 않았다. 태길은 일주일에 한번씩 두 시간을 걸어 메리놀병원에 갔다. 손에는 버스비가 없었다. 함부로 면회가 허락되지 않았기에 병실 창문에서 엄마 얼굴만 물끄러미 쳐다보다 발길을 돌렸다. 창문에 얼굴을 대어서라도 엄마를 느끼고 싶었다.

오늘은 병원 창문에서 보던 엄마가 영원히 먼 곳으로 갈 것 같다. 태길은 밤이 되도록 엄마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엄마 냄새를 맡아보고 팔을 잡아보고 얼굴을 매만지다 잠이 들었다.

“언니! 언니! 아이고, 언니!”

잠결에 통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니 가족들이 어머니의 주검 앞에서 울부짖는다. 태길이 잠든 시간에 엄마는 말 한마디 없이 먼 곳으로 떠나버렸다. 엄마의 장례는 다음날 아파트 옥상에서 치러졌다.

어머니가 없는 집은 적막했다. 10개월쯤 지났을까. 버스 기사였던 아버지가 아가씨를 하나 데려왔다. 천일관광 고속버스 안내원이라고 했다. 태길이 어머니를 아직 떠나보내지 못할 때였다. 새어머니는 태길의 마음을 얻어 보려고 학교 앞에 빵을 들고 찾아오기도 했다. 태길은 이유 없이 새어머니가 미웠다. 그렇게 일찍 다른 여자를 집에 들인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듬해인 1984년,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을 쓰고 나가도 금세 옷이 다 젖어버릴 만큼 장대비가 내리던 날에 새어머니가 큰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태길은 문 앞에 선 새어머니와 마주쳤다. 어디로 가느냐고 묻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새어머니가 택시를 타고 사라졌다. 그날 이후 새어머니는 다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고모와 친할머니가 숨진 어머니의 패물이 사라졌다며 새어머니를 의심할 때였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패물은 새어머니가 사라진 뒤 집 안 어딘가에서 뒤늦게 나왔다.

어머니와 새어머니를 잃은 뒤 태길의 가출이 시작됐다. 중학교 1학년 때 퇴학을 당했다. 학교에 갈 일 없는 태길은 1984년 여름 어느 날, 집을 나와 남포동 용두산공원 등나무 아래에 누웠다. 머리 위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날도 따스하고 바람도 적당했다. 잠이 쏟아졌다. 몇 시간쯤 지났을까. 누군가 태길의 허리끈을 달랑 들었다. 열네살 소년이 버둥거려도 소용없었다. 태길은 짐짝처럼 가리개로 덮인 트럭에 실렸다. 트럭에 ‘형제 복지원’이란 글씨만 없었더라도 뭘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종종 집을 나갔다 들어오던 동네 친구들은 형제복지원이 사람을 감금한다고 말해주었다. 어른들은 믿지 않았지만.

트럭에는 사람이 스무명쯤 타고 있었다. 그날 밤 가리개로 덮인 복지원 트럭은 길을 달리다 중간중간 섰고 그때마다 사람들이 올라탔다.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요?”

트럭에 탄 아저씨 한명이 소리치며 반항했다. 복지원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아저씨를 개 패듯이 지근지근 짓밟고 때렸다. 아저씨는 피를 흘리며 복지원 직원의 발밑에서 신음 소리를 냈다. 이윽고 종잇장처럼 구겨진 아저씨가 트럭 구석에 머리를 숙인 채 처박혔다.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탄 사람들은 아저씨의 패배를 보며 공포심에 몸을 떨었다. 개처럼 맞기 싫으면 겁에 질린 얼굴로 꼬리를 내려야 했다.

새벽 세시쯤 지났을까. 트럭은 한곳에 정차했고 태길은 사람들을 따라 내렸다. 쇠막대를 들고 똑같은 옷을 입은 복지원의 직원들이 돌아다닌다. 절대 열리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문이 찌그덩 소리를 내며 열렸다 닫혔다. 차에서 내려 신입 소대라는 건물에 끌려갔다. 복지원 직원들은 팬티 한 장 남기지 않고 옷을 벗으라고 명령했다. 태길도 사람들을 따라 옷을 벗었다. 나체의 남자들이 지시에 따라 신입 소대에 두 줄로 정렬하자 직원이 나와 몸을 수색했다. 신체검사가 끝나자 파란색 추리닝을 배급해 준다. 옷을 갈아입자 취침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태길은 낯선 공간, 낯선 사람들의 곁에 누워 눈을 감았다. 이곳에 왜 끌려왔을까, 빠져나갈 수는 있을까, 살 수는 있을까…. 닥쳐온 불행이 이해되지 않았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지만 이불 속에서 소리를 낼 수는 없었다. 1984년 어느 여름밤.



http://www.hani.co.kr/arti/SERIES/624/653452.html?recopick=5


한겨레 / 201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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