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일의 <포스트 트라우마 - Post TRA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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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일의 <포스트 트라우마 - Post TRAU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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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발의 그후 1년

    2015.05.09 by 미메시스TV

  • SBS "형제복지원 사건" 방송

    2014.12.29 by 미메시스TV

  •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⑤ 투견

    2014.09.13 by 미메시스TV

  •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④ 은영의 사탕

    2014.09.13 by 미메시스TV

  •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③ 프로야구와 장례식

    2014.09.13 by 미메시스TV

  •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② 굶주림

    2014.09.13 by 미메시스TV

  •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① 푸른 창문

    2014.09.13 by 미메시스TV

  •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인트로

    2014.09.13 by 미메시스TV

  • "나는 개였다".. 형제복지원 생존자들 '눈물의 증언'

    2014.07.10 by 미메시스TV

  •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2013.11.20 by 미메시스TV

  • 구겨진 삶

    2013.11.10 by 미메시스TV

  •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씨 인터뷰 (11.8)

    2013.11.10 by 미메시스TV

  • '형제복지원' 전두환 정권시절의 인권유린 사건

    2013.08.30 by 미메시스TV

  • 다시 그린 '한종선' 그림

    2013.08.25 by 미메시스TV

  • "인권오름" <26년, 형제복지원>

    2013.08.14 by 미메시스TV

  • 513명 숨졌다

    2013.08.10 by 미메시스TV

  • 死體 상당수 "증발"

    2013.08.06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 <10> 말해도 맞고 늦게 씻어도 맞고…이런 곳, 언제까지?

    2013.08.06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 <9> 531명 죽인 엽기 사건, 26년 지났다고 묻어야 하나

    2013.08.01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 <8> 매일 고문, 밤엔 동성 간 성폭력…거긴 지옥이었다

    2013.07.18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 <7> '가난은 죄' 처벌 강화한 MB 정부…박근혜 정부도?

    2013.07.14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6> '시설'은 어떻게 사체까지 300만 원에 팔았나?

    2013.07.05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 <5> 앞에선 '전 재산 사회 출연', 뒤에선 '시설 재테크'

    2013.06.28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 <4> 박정희와 전두환은 왜 '부랑인'을 겨냥했나

    2013.06.12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 <3> "도가니"보다 극악했던 그곳, 26년 지난 지금도

    2013.06.11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 <2> 500명 넘게 죽인 그곳…박정희·전두환은 책임 없나?

    2013.06.11 by 미메시스TV

  • [26년, 형제복지원] <1> 전두환은 왜 531명 죽어 나간 그곳을 칭찬했나

    2013.06.10 by 미메시스TV

  • 부산에도 "도가니"

    2013.04.23 by 미메시스TV

  • 책 <살아남은 아이>

    2013.04.23 by 미메시스TV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발의 그후 1년

형제복지원 진상규명 특별법 발의 그후 1년… ‘1987년의 세월호’ 국회 문턱에서 다시 침몰하나 “다 맞아서 생긴 흉터예요. 복지원에서 나온 뒤로 머리는 절대 밀지 않았는데….” 지난 6일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 6번출구, 1984년 누나와 함께 부랑인으로 지목돼 형제복지원에 끌려갔다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씨(40)가 시민들의 서명을 받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천막도 없이 이불 한장에 의지한 채 벌써 아흐레째다. 일주일 전 삭발한 머리는 흉터 자국으로 우둘투둘했다. 복지원 시절 맞아서 피가 난 자리를 이가 파먹으면서 생긴 흉터다. 구타와 비위생적 환경이 만들어낸 흉터는 성인이 되어서도 없어지지 않았다. 머리가 커지면서 기괴한 모양으로 뒤틀리며 부위가 넓어졌다. 30년이 흘러도 고스란히 남아 ..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5. 5. 9. 20:48

SBS "형제복지원 사건" 방송

SBS 송년특집에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다시한번 방송했습니다 80년대에.. 500명이 훨씬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국가폭력" 사건입니다만 아직도 진상규명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고.. 생존자들의 고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4. 12. 29. 19:41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⑤ 투견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⑤ 투견 박태길씨가 어릴 때 살던 부산 영도구 영선동 미니아파트 창밖 너머로 바다가 보인다. 1978년 건축된 미니아파트는 부산의 가장 오래된 아파트 가운데 한 곳이다. 부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때려.”여자 아동 소대에 신입 아이가 한명 들어왔다. 은영이 몇 달 전 들어왔을 때 그랬던 것처럼 울며 내보내 달라고 떼를 쓴다. 아직 형제복지원이 어떤 곳인지 감을 잡지 못한 것 같다. 작고 힘없는 은영에게 조장 엄기자가 명령한다. “저 애 때리라고.”은영은 주춤거리며 주먹을 들지 못했다. 복지원에 들어오기 전 동네 아이들과 싸움을 하기는 했지만 이유 없이 사람을 때린 적은 없다. 저 아이를 왜 괴롭혀야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개새끼.” 덩치 큰 조장..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4. 9. 13. 20:28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④ 은영의 사탕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④ 은영의 사탕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mayseoul@naver.com유혹의 순간이 다가왔다. 태길이 아동 소대 조장이 되기 전, 그러니까 탈출에 실패하고 원장에게 실컷 두드려 맞은 뒤 근신 소대에 배치돼 온종일 돌을 깨는 고역을 하던 때였다.“오늘 밤 한번 대주면 근신 소대에서 나가게 해 줄게. 화장실로 따라온나.”태길처럼 부산 영도가 고향이라던 6소대(근신 소대) 조장이 그에게 슬며시 제안을 해왔다. 태길은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평소 같으면 무시했을 그 덫이 밀물처럼 다가와 빠져나가지 않았다. 매일 반복되는 돌 깨는 작업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돌을 깨는 손은 감각을 잃을 만큼 얼얼해졌고 조금이라도 꾀를 부리면 관리자들로부터 얻어터졌다. 화장실에 갈 때만 손에..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4. 9. 13. 20:25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③ 프로야구와 장례식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③ 프로야구와 장례식 박태길씨가 부산 중구 광복동 용두산공원을 걷고 있다. 박씨는 용두산공원과 인연이 깊다. 1984년 형제복지원 직원한테 끌려간 곳이 용두산공원이었고, 복지원을 탈출한 뒤 몇년이 지나 자신을 때리던 소대장들을 우연히 다시 만난 곳도 용두산공원이다. 부산/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불행은 지극히 평범한 날에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살던 집이 사라지며 믿었던 관계들이 파괴된다. 불행이 뿌리째 뽑아버린 인생들은 토양을 잃고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나 도시의 아무 곳에 내던져진다. 헐벗은 것들이 다시 뿌리를 내려 보지만 쓰레기나 아스팔트를 뚫으려 할수록 상처가 생긴다. 피투성이라도 살아보라고 말하는 신에게 돌을 던지고 싶은 날이 ..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4. 9. 13. 20:22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② 굶주림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mayseoul@naver.com생명은 질기다. 지옥 끝으로 떨어져도 악마들에게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때리고 맞는 장면을 매일 보다 보면 어느덧 견디게 되고 무뎌졌다. 시간은 사람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식당에서 수용자들이 맞는 걸 보아도 배가 고팠고 배가 고프면 숟가락을 들고 식판에서 밥을 떠먹었다. 복지원에서 사람이 두들겨 맞는 일은 은밀하지 않다. 복지원의 세세한 규칙은 헌법보다 존엄했고 이를 어길 때에는 학대와 폭력이 정당성을 부여받았다. 원장 박인근이나 그의 하수인들은 원생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수용자를 때릴 권한을 태어날 때부터 가진 사람처럼 굴었다.이곳 형제복지원은 거대한 성이다. 부산시 북구 주례동 산18-1번지, 6820평의 복지원에는 각종 시설들이 질서 있게 배..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4. 9. 13. 20:18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① 푸른 창문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① 푸른 창문 등장 인물 선옥이 떠난 거리에서…태길은 다시 길 잃은 개가 되었다▶ 1984~1987년, 형제복지원에 갇힌 박태길의 삶을 전합니다. 3년의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들었고 그가 사는 오늘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것입니다. 형제복지원은 파문을 일으키며 세간에 알려졌다 잊혀지기를 반복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복지원에 갇혔던 수만명의 인생과 기억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었습니다. 박태길씨는 현재 부산 참다움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기사는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취재와 자료 수집을 통해 쓰여졌습니다.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mayseoul@naver.com쇠창살 밖으로 검은 하늘에 흰 달이 걸려 있다. 희미하게 달빛을 받은 캄캄한 쇠창살 안에는 칼..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4. 9. 13. 20:15

[한겨레]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인트로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인트로:12년간 513명 사망…“그곳은 지옥이었다” [형제복지원 대하 3부작] 제1회 : 열다섯살 조장 태길이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충격적 실화’ 지옥 같은 삶에 저당잡힌 자들의 이야기 우리는 형제복지원을 정말 알고 있는 것일까?형제복지원은 알려진 사건이다. ‘감금, 가혹행위, 노동력 착취, 성적 학대, 인권 유린이 잔혹했으며 탈출하다 실패한 원생이 맞다가 사망하기도 했다. 1975~1986년 형제복지원에서 숨진 사망자는 513명이다.’ 우리가 형제복지원에 대해 아는 사실이다.1987년 한 해에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원생은 3000여명이다. 1960년 ‘형제육아원’으로 시작돼 원장 박인근씨가 특수감금 혐의 등으로 구속된 1987년까지 이곳에 갇혔던 수만명의 사람들이 대한..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4. 9. 13. 20:09

"나는 개였다".. 형제복지원 생존자들 '눈물의 증언'

"나는 개였다"…형제복지원 생존자들 '눈물의 증언'책임 회피하는 안전행정부…국가의 책임은 없다? 국회 의원회관 제3세미나실이 눈물 바다가 됐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 유린이 발생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생존자들이 8일 국회에서 증언에 나섰다. 1987년에 세상에 알려진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년 박정희 정권의 내무부(현 안전행정부) 훈령 410호를 통해 국가 차원의 '인간 청소' 정책에서 시작됐다. 이후 1980년 쿠데타를 통해 불법으로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 정권이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두고 이를 적극 활용했다. 시민단체는 이를 '인간쓰레기로 분류된 인간'에 대한 '사회정화'의 명목으로 행해진 국가 차원의 폭력으로 규정하고 있다. (에 연재된 '26년, 형제복지원' 기사 바로가기) 형제복지..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4. 7. 10. 22:33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제가 "애니메이션 파트"를 맡고 있는 부산형제복지원 사건 '다큐영화' (감독: 전상진)에 관심과 참여 부탁드려요~^ 다큐멘터리 피칭 포럼 2013 http://www.funding21.com/event/docu/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11. 20. 23:18

구겨진 삶

한번 망가지거나 구겨진.. '삶'과 '역사'는 쉽게 펴지지 않는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다큐영화 의 "애니메이션" 시퀀스에 사용된 '구겨진 종이들'.... 어쩌면 구겨진 것들을 정성스럽게 "압착"하면 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11. 10. 02:40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씨 인터뷰 (11.8)

한종선씨는 잘 웃었다. 형제복지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웃었고, 사진 촬영을 하면서도 웃었다. “마음이 아프다고 오만상을 써가면서 이야기하면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어차피 내 얘기 잘 믿어주지도 않을 테니, 이왕 얘기하는 거 듣고 싶게, 재미있게 하자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한씨 속에 있는 상처투성이의 여덟살 꼬마는 간절하게 말한다. ‘들어주세요, 우리 얘기 들어주세요, 어두운 곳에 갇혀 있는 우리를 봐주세요.’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토요판/커버스토리]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씨 인터뷰 형제복지원 사건 생존자 한종선 26년만에 국가의 책임을 묻는다▶ 한종선씨는 올해 대전, 부산, 전라도 등 전국을 다녔습니다. 언론을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을 듣고 연락 온 피해자들을 만나기 위해서..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11. 10. 02:39

'형제복지원' 전두환 정권시절의 인권유린 사건

87년 당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께서 최근 인터뷰를 하셨네요 http://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bcastSeqNo=1053379&p=2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8. 30. 23:51

다시 그린 '한종선' 그림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생존자 '한종선'님의 그림을 제가 다시 그려봤습니다~ 책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211272156245&code=960201 87년 당시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수사검사였던 '김용원' 변호사 인터뷰 http://www.mbn.co.kr/pages/vod/programView.mbn?bcastSeqNo=1053379&p=2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8. 25. 21:25

"인권오름" <26년, 형제복지원>

26년,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사건’을 둘러싼 역사적, 현재적 쟁점을 살펴보다 [26년, 형제복지원] 인간 존엄성 따위는 없었다 (356호) - 명숙생존자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듣기 위해 노력해야생존자들이 존엄성을 회복하려면 존중받고 있다는 ‘사회적 확인’이 필요해[26년,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관련 특별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355호) - 최정학, 김재완[26년, 형제복지원] 과거가 현재인 사람들 (354호) - 한종선또 다른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의 고통을 끝내려면[26년,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사건과 경범죄처벌법 (353호) - 이호중빈곤 단속의 공통점과 연속선[26년, 형제복지원] ‘시설 사회’에서 ‘시설’은 사라지지 않는다 (352호) - 고병권우리 사회 통치 모델로서의 시설[26년, 형제복..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8. 14. 01:49

513명 숨졌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12년 동안 513명 숨졌다" (1987년 2월 2일 / 동아일보)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8. 10. 22:27

死體 상당수 "증발"

동아일보 1987년 2월 3일 보도기사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8. 6. 23:10

[26년, 형제복지원] <10> 말해도 맞고 늦게 씻어도 맞고…이런 곳, 언제까지?

말해도 맞고 늦게 씻어도 맞고…이런 곳, 언제까지?[26년, 형제복지원] 생존자들이 더 증언할 수 있도록 여건 갖춰야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8. 6. 23:10

[26년, 형제복지원] <9> 531명 죽인 엽기 사건, 26년 지났다고 묻어야 하나

531명 죽인 엽기 사건, 26년 지났다고 묻어야 하나[26년,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특별법 제정해야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곱씹..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8. 1. 00:18

[26년, 형제복지원] <8> 매일 고문, 밤엔 동성 간 성폭력…거긴 지옥이었다

매일 고문, 밤엔 동성 간 성폭력…거긴 지옥이었다[26년, 형제복지원]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말합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7. 18. 01:22

[26년, 형제복지원] <7> '가난은 죄' 처벌 강화한 MB 정부…박근혜 정부도?

'가난은 죄' 처벌 강화한 MB 정부…박근혜 정부도?[26년, 형제복지원] 빈곤 단속의 공통점과 연속선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곱씹..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7. 14. 03:37

[26년, 형제복지원]<6> '시설'은 어떻게 사체까지 300만 원에 팔았나?

그 '시설'은 어떻게 사체까지 300만 원에 팔았나?[26년, 형제복지원]우리 사회 통치 모델로서의 시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곱..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7. 5. 01:51

[26년, 형제복지원] <5> 앞에선 '전 재산 사회 출연', 뒤에선 '시설 재테크'

앞에선 '전 재산 사회 출연', 뒤에선 '시설 재테크'[26년, 형제복지원] 문제는 공공 영역 사유화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곱씹..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6. 28. 00:50

[26년, 형제복지원] <4> 박정희와 전두환은 왜 '부랑인'을 겨냥했나

박정희와 전두환은 왜 '부랑인'을 겨냥했나[26년, 형제복지원] 독재자의 훈령, 오늘날의 또 다른 훈령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곱씹..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6. 12. 15:25

[26년, 형제복지원] <3> "도가니"보다 극악했던 그곳, 26년 지난 지금도

보다 극악했던 그곳, 26년 지난 지금도…[26년, 형제복지원] 형제복지원, 아직도 건재하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곱씹을 때, 답..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6. 11. 08:50

[26년, 형제복지원] <2> 500명 넘게 죽인 그곳…박정희·전두환은 책임 없나?

500명 넘게 죽인 그곳…박정희·전두환은 책임 없나?[26년, 형제복지원] 유신에서 5공까지, 묻혀버린 수용소의 진실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6. 11. 08:50

[26년, 형제복지원] <1> 전두환은 왜 531명 죽어 나간 그곳을 칭찬했나

전두환은 왜 531명 죽어 나간 그곳을 칭찬했나[26년, 형제복지원] 전두환과 형제복지원의 커넥션 형제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열정 속에서도 우리는 형제복지원이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의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2013년 한국 사회에 여전히 시설은 다양하게 존재하고 여러 권력과 폭력의 구조들이 그곳을 재생성하기도, 은폐하기도 한다. 여덟 살이던 1984년 10월 16일 형제복지원에 입소해 1987년 또 다른 시설로 옮겨진, '살아남은 아이' 한종선이 다시 입을 열어 목소리를 냈다. 이제라도 시설은 어떻게 생겨났고 국가와 사회는 어떻게 개인을 부수어 갔는지 물어야 하는 때이다. 살아남은 자와 다른 사회 구성원이 소리를 들으려 하고 여러 질문들을 곱씹을 때..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6. 10. 02:51

부산에도 "도가니"

부산에도 '도가니'? 이 지옥은 왜 무사한가![프레시안 books] 한종선·전규찬·박래군의 기사입력 2013-02-01 오후 7:00:14 1987년, 나는 서울 은평구에 사는 초등학생이었다.대학가나 시내 중심가로부터 외떨어진 곳에 살았기 때문에 당시 매일매일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는 데모의 행렬도 한 번인가밖에 보지 못했고, 부모님은 TV 뉴스에 데모대가 등장하면 "대학 가면 공부나 열심히 해라, 저런 데 끼지 말고"라고 타일렀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1987년이 어떤 해인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민주화 항쟁, 박종철 치사 사건, 남영동 고문실, 이런 단어를 알게 된 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난 다음이었다. 나는 분명 그 시대를 살았지만 그 시대를 알지 못했다. 내가 살았던 시대는 언제나 한참 전의 ..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4. 23. 17:48

책 <살아남은 아이>

1987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려진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전두환 정권의 비호와 지원 하에 운영된 '부산 형제복지원'은 당시 10여년 동안 무려 513명이 사망했다 이제 이 '은폐와 망각'의 역사를 새롭게 '기억하고 애도'하려 한다~ 인간이 만든 지옥, 그곳이 '형제복지원' [서평] 한종선, 전규찬, 박래군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845612

자료/자료_형제복지원 사건 2013. 4. 2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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